“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자는 바로 스탈린이다. 그는 사적으로 수사관을 불러 신문 방법까지 지시했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때려라, 때려라, 또 때려라!” 1956년 2월 25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인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는 스탈린 사후 처음 열린 제20차 당대회에서 장장 네 시간에 걸쳐 ‘개인숭배와 그 결과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스탈린 격하 연설을 했다. 1937년 자신을 따르지 않는 당중앙위원 139명 중 98명을 총살한 일을 비롯한 스탈린의 온갖 비리와 실정을 고발했다. 인민과 공산당을 영도하는 자는 오류가 없다는 ‘영도자 무오류론’에 대한 파산 선언이었다.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의 파장은 엄청났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 수천 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등 전 세계 사회주의 사회가 뒤흔들렸다.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중국의 마오쩌둥은 흐루쇼프를 수정주의자로 비난하면서 소련과 대립각을 세웠다. 북한의 김일성도 그에 동조하는 한편 그해 8월 연안파와 소련파가 자신을 비판하자 그들을 반당종파분자로 몰아 제거한 뒤 개인숭배와 독재를 강화해나갔다.
그로부터 25년 후 ‘마오쩌둥 무오류론’도 무너졌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전개된 10년의 문화대혁명은 당과 국가 그리고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엄중한 좌절과 손실을 겪게 했다. 이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 동지가 발동하고 영도한 것이다.” 덩샤오핑(1904~1997)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는 1981년 중국공산당 제11차 당대회에서 마오쩌둥의 오류를 공식 비판하며 교조적 개인숭배를 배격하고 나섰다.
‘수령의 무오류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걸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리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서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며 아버지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치적을 비판해 그 진의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3대 세습체제에서 통치의 권위를 확보하려면 선대의 무오류를 입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김 위원장이 돌연 그에 상반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선대의 잘못으로 금강산 경협을 지적한 건 유감이지만, ‘수령 무오류성’에 균열 조짐이 보이는 것은 반갑다. 전지전능한 신에게만 허용되는 무오류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 자체가 오류여서다. 김 위원장이 진정 경제 발전을 바란다면, 금강산 경협 포기 또한 오류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게 덩샤오핑이 걸었던 개혁의 길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