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의 불공정입니다.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고,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도 강구할 것입니다.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습니다.”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선 불공정, 특히 교육 불공정에 대한 짙은 강박관념이 묻어났다. 그 압박감은 전날 교육부 장관이 밝힌 정시 확대 반대 방침을 하루 만에 뒤집은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조국 사태의 후유증이다. 단 2주의 인턴으로 병리학회 논문 제1 저자가 되는 등 일반인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입 스펙’을 자녀에게 제공한 불공정 교육의 표본을 가장 신뢰하는 참모에게서 확인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하지만 그렇더라도 교육부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기존 정책과 상반된 입시제도 개편안을 불쑥 발표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독단적”이라는 비판이 빗발치는 건 당연하다. 자기 주장에 앞서 남의 말을 잘 듣는 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고려하면 더욱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랬을까. 문 대통령의 이전 언행에서 정책 급변의 심리적 배경을 짐작할 만한 단서를 발견했다. 대통령 당선 전인 2017년 1월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이다. 문 대통령은 책을 통해 주류 교체를 역설했다. “조선 시대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세력이 일제강점기 친일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독재세력이 되고, 그렇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기득권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보수라고 자처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이행)’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도덕적 의무를 저버린 채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한 인사들이 주류가 된 것이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라는 시각이다.
“누구나 학벌, 학력, 성별, 집안이나 배경, 지역 또는 외모 등에 차별받지 않고 오직 능력이나 실력으로만 경쟁할 수 있고 실패해도 다시 회복의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그런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분들로 (주류를) 구성하고 싶습니다. 그런 정신적 태도와 의지를 가진 분들로요.” 문 대통령이 주류 교체를 바라는 것은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다. 5년 임기의 반환점에 다가선 지금, 문 대통령은 뜻을 이뤘을까.
정권 교체를 주류 교체로 본다면, 형식적으론 뜻을 성취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아직 요원하다. 능력이나 실력이 아닌 집안과 배경이 청년의 미래를 결정하고, 한 번 쓰러지면 재기하기 힘든 게 우리 현실이어서다. 조국 사태를 통해 그 불공정성을 또다시 뼈저리게 확인했다. 문 대통령의 강박관념은 거기서 기인하는 듯하다. 그가 국회연설에서 “공정이 바탕이 돼야 혁신도 포용도 평화도 있을 수 있다”며 ‘공정’이란 말을 27번이나 사용한 건 그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문제에 대한 피상적 인식일 뿐이다. 본질은 주류를 교체했지만 그 역시 이전 주류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교체된 주류가 그런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란 말 없인 국정 설명을 못할 정도로 공정을 중시하면서도 바뀐 주류가 기득권층이 되어 있는 진실에는 눈을 감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그러고선 진보를 자임하며 정치구도를 ‘진보 대 보수’의 진영 논리로 몰아간다.
과연 그런가. 조국 사태에 반발해 촛불을 든 청년들이 보기에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기득권층이며, 불공정하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진영 논리를 벗어난 불공정에 있다고 수없이 외쳐도 아랑곳없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처럼 청년들을 정치의식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로 치부하려 든다. 청년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재를 지적하는데 버릇없다고 나무라는 격이다. 이러니 어찌 청년들이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등을 돌리지 않겠는가.
“만약 조국 장관 임명이 문제의 근원이고 핵심이라면 조국 사퇴로 다 해결됐어야 하는데, 지금 안 그렇지 않나. 그의 사퇴로 복원이 안 된다는 것은, 국민이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거다. 젊은 층이 이 사회가 과연 공정하느냐고 묻게 된 책임은 이 당과 정부에 있다. 거기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응답해야 하는데, 당은 지금 조국 뒤에서 마치 조국 하나가 잘못해서 그런 것처럼, 그것만 치우면 다 끝난 것처럼 하고 있다.” 민주당의 초선 이철희·표창원 의원이 연달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충언을 해도 오불관언이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법인데, 듣기 싫다고 외면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 편향’이다. 그러면서 “20년 집권”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권력욕을 드러낸다. 바꿔 보니 그게 그것이었다는, 주류 교체의 서글픈 민낯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