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2막 연극이라면, 2막에서는 1막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싶을 거다.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는 파리시 세관 공무원이었지만, 늘 화가로서의 인생 2막을 꿈꿨다. 가난 때문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수입이 안정적인 공무원이 됐지만 틈틈이 그림을 그리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전문 화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루소는 스스로를 위대한 화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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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의 자화상. |
루소가 46세 때 그린 자화상은 화가로서 그의 자부심을 잘 보여준다. 검정색 양복과 베레모를 착용한 그는 화가라는 직업을 강조하기 위해 손에 붓과 팔레트를 들고 서 있다. 배경에는 만국기를 휘날리며 센강을 지나는 배와 다리 에펠탑 집 등이 보이고, 하늘에는 열기구가 떠 있다. 배는 그가 매일 센강의 관문에서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검사하던 화물선이다. 에펠탑은 자신이 예술의 도시 파리의 화가임을 보여주기 위해 동원됐고, 만국기와 열기구는 1899년 열렸던 파리 만국박람회를 상징한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만국박람회는 당대의 기술진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로 외국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던 루소에겐 큰 충격이자 세계를 향한 도전 의식을 심어주었다.
화가는 자신을 에펠탑이나 열기구보다 훨씬 크고 높이 솟아 있게 그림으로써, 앞으로 자신이 프랑스 파리를 넘어 세계적인 예술가가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자화상은 일종의 선언서인 것이다.
자연을 유일한 스승으로 여겼던 루소는 스스로를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라고 생각했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운 터라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기법을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자신만의 사실주의를 개척해 나갔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인상주의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빛이나 색채, 스냅사진처럼 우연히 잘린 것 같은 화면 구도, 빠른 붓질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명확한 것을 좋아했기에 붓질 자국이 보이지 않게 깔끔하게 색면을 마감했고, 인상주의자들이 금기시했던 검은색도 과감하게 사용했다. 원근법이 무시된 그의 그림은 마치 콜라주처럼 각각의 대상을 그려 한 화면에 모아 놓은 것처럼 입체적이면서도 독특했다.
루소의 인생 2막은 끊임없는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끝내 찬란한 결실을 맺었다. 49세 때 비로소 은퇴하고 전업 작가가 된 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60세부터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6년 뒤인 1910년 봄 파리의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이국적인 정글 그림은 동료 화가들과 평론가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해 가을 세상을 등지고 말았지만 후회 없는 삶이었다. 아마추어 화가로 시작했지만 자기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했던 루소는 훗날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며 미술사를 빛낸 위대한 이름이 되었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