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취직하면 평생 다니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사표를 쓰지 않는 한 쫓겨나는 일은 없었다. 평생직장은 미국 같은 나라에는 없는 우리의 미풍양속이었다. 그런 시절에는 취업도 비교적 쉬웠다. 웬만한 대학의 상대 공대 학과 사무실에 대기업 취업 추천서가 넘쳐났다. 직장도 골라서 가던 때였다. 요즘 세대에게는 만화 같은 이야기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이런 꿈 같은 시절의 종언을 고했다. 정리해고가 도입된 것이다. IMF가 우리 정부와 협상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요구했다고 한다. 정리해고는 1998년 2월 노사정 합의에 따라 노동법 개정을 통해 명문화됐다. 소위 진보정권으로 불리는 ‘국민의 정부’가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아이러니다. 진보는 밥만큼은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그때 알았다. 자유가 반드시 민주적인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는 무한 경쟁으로 내몰았다. 정리해고로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지금도 정리해고란 말을 들으면 몸을 움찔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생존 본능의 작동이다. 규제가 꼭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대가를 치른 뒤 깨닫게 됐다. 몸뚱이 하나 믿으며 살아가는 월급쟁이 신분이라면 규제가 없는 사회는 정글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평생직장 개념은 무너졌고, 고용 형태는 급속히 달라졌다. 기업은 아예 해고가 자유롭고 임금이 싼 임시직을 선호했다. 기업의 첫째 목적은 이윤 추구이니까. 비정규직은 급속히 확산됐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비정규직을 더 양산해 사회 문제가 됐다. 2년 고용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법은 계약해지와 해고의 남발로 이어졌다. 계약직의 기존 업무를 외주 용역화로 전환하는 사례가 본격화됐다. 이른바 파견직이 확산됐다.
최근 우리나라 비정규직 수가 748만여 명으로 2007년 이후 가장 많다는 우울한 통계가 나왔다. 전체 근로자의 36.4%가 비정규직이고 월평균 급여는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호 약속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였기에 걱정이다.
무릇 사회적 격차는 갈등을 의미한다. 상대적인 빈곤은 박탈감으로 이어지는 탓이다. 더욱이 우리는 사회 안전망이 완전하지 않다. 갈등이 깊어지면 경쟁력도 그만큼 떨어진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앞선 진보정권의 실패를 문재인 정부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