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은 한반도에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해였다. 그해 2월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하지만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는 등 북핵 문제로 긴장이 고조돼 있던 터라 성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반전의 계기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마련했다. 그는 그해 6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에 남북한은 부총리급 예비접촉을 갖고 7월 25~27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김 주석의 타계로 남북 정상회담은 무산돼 버렸고, 남한 내에선 대북 조문단 파견을 두고 결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만큼 조문하는 게 옳다는 주장과, 6·25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에게 조문하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YS 정부는 후자에 기대 조문에 대한 어떠한 발언도 김일성 추종세력으로 간주해 사법처리하겠다며 반대 여론에 재갈을 물렸다. 만약 그때 ‘조문정치’가 이뤄졌더라면 2000년 6월 처음으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이 더 앞당겨지고, 김대중(DJ) 대통령이 아닌 YS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2009년 8월, DJ 서거 때 남북 정상회담 개최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조문단의 일원으로 방남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저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잘 실천되면 앞으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며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로 인해 극도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조문정치로 타개해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거부로 이 또한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의 별세에 조전을 보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은 조의문에서 강 여사 별세에 대해 깊은 추모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문 대통령께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9년에 이어 남북한의 조문정치에 또 시동이 걸렸다. 2009년의 경우와 달리 이번에는 남한 정부가 북한의 조문정치에 화답할 자세를 완비하고 있는 터라, 금강산관광 경협 갈등 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해빙의 전기를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외롭고 힘들 때 위로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이듯이, 참정치는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 한다. 남북한의 조문정치가 그런 정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