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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다시 ‘최계락 시인’을 떠올리는 계절 /조봉권

모든 게 힘들었던 그 시절 순수한 ‘동시’로 심금 울려

최계락문학상 19회 맞아 고결한 문학 정신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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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맑은 날이면 교실 창문 너머로 바다 건너 ‘섬’이 보이곤 하던 학교였는데, 그 섬이 일본 대마도였다. 아주 화창한 날, 아이 하나가 문득 “야! 대마도다” 하고 외치면, 우리는 우르르 창가로 몰려가 하염없이 수평선 언저리 대마도를 쳐다보곤 했다(참고로 그 학교는 고 이태석 신부가 5, 6학년을 다니고 졸업한 부산 서구 천마초등학교다).

1970년대 후반이었으니 삶과 교육 환경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등굣길에 동급생 하나가 학교에 가지 않고 어딘가 급히 뛰어가기에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형이 간밤에 연탄가스를 마셔서 (구급약으로 쓰려고) 가게에 사이다를 사러 간다”고 답하며 황급히 가던 길을 간 날도 있다. 그 친구의 형이 무사했는지는 확인 못했지만, 이 한 장면에 그때의 주거 환경과 의료 수준이 담겼다.

하굣길에는 길 위에 죽은 동물(예컨대 쥐)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때 우리 꼬마들 풍습에는 ‘죽은 쥐를 봤을 때 침을 뱉고 깨금발을 일곱 번 뛰지 않으면 재수가 없다’는 게 있었다. 문제는 침 뱉고 깨금발 일곱 번 뛰는 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당시 위생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런 날들이었다.

몇 학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여건이 척박했던 그때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예능이나 문학을 아주 열심히 진지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한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고, 무척 고맙다. 그날은 동시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공부도 잘하고 장난기도 많았던 내 단짝 친구에게 동시를 한 편 암송하게 했다. 그 동시의 전문은 이랬다.



개나리 노오란

꽃 그늘 아래

가즈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사알짝

신 벗어 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갔나

가즈런히 기다리는

꼬까신 하나



내 단짝 친구는 자신 있다는 듯 신명이 나서 읊었다. 그런데 막바지에 ‘사고’를 쳤다. ‘맨발로 한들한들’을 ‘맨발로 살랑살랑’으로 외워버린 것이다. 그 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고, 그 장면은 유년 시절 한순간을 ‘펑’ 하고 찍어놓은 낡은 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았다. 이 시는 최계락(1930~1970) 시인의 ‘꼬까신’이다.

지금도 신기하다. 그때 우리는 모두 이 시는 아름답다고 느꼈다. 시가 어린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어려운 말도 없다. 어른이 된 지금 알고 보니 이런 시가 ‘좋은 시’ ‘좋은 서정시’다. 그는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최계락 시인의 동시 ‘외갓길’은 우리를 아득한 아름다움의 세상으로 데려갔다. ‘복사꽃 발갛게 / 피고 있는 길 // 파아라니 오랑캐가 / 피여 있는 길 //엄마한테 손목 잡혀 / 나서 첨으로 // 하늘하늘 아가의 / 외갓집 가는 길은 // 나비가 앞장 서는 / 붉은 언덕길 // 바람이 앞장 서는 / 파아란 들길’(전문).

최계락 시인은 참 많은 선물을 주고 떠난 시인이다. 그는 1930년 경남 진주시(당시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에서 태어났다. 진주고와 동아대 문과를 수료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고교 시절부터 문학 매체에 시를 발표하며 ‘소년 문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청년 시절 ‘낙화’의 시인 이형기와 함께 진주에서 문학활동을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경남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국제신문에서 문화부장으로 일하며 부산의 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국제신문 편집부국장 겸 정경부장·사회부장으로 일하다 1970년 마흔 살에 타계했다.

㈔최계락문학상재단(이사장 최종락)과 국제신문은 해마다 11월 최계락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한다. 올해로 어느새 19회째가 되었다.

해마다 최계락문학상 수상자들은 수상 기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최계락 선생의 이름을 간직한 문학상을 받은 것이 무엇보다 고맙고 뜻깊다.” 그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이 그만큼 값지고 순수하다는 증언이다. 그래서, 11월은 시인 최계락을 다시 떠올리는 계절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 또 한 편 떠올려본다. ‘꽃씨’ 속 세상은 이토록 맑고 아름답고 신비한 우주다.

‘꽃씨 속에는 /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 꽃씨 속에는 / 빠알가니 꽃도 피면서 있고 // 꽃씨 속에는 / 노오란 나비 떼가 숨어 있다’(‘꽃씨’ 전문).


편집부국장 겸 인문연구소장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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