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2일 열린 제32회 베니스 국제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남자부 우승은 이탈리아의 20대 무명 선수가 차지했다. 22년 만의 자국 우승이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어부지리였다. 이날도 에티오피아와 케냐 선수들이 일찌감치 선두그룹을 형성해 앞서가고 있었다. 그런데 반환점을 착각해 줄줄이 엉뚱한 곳을 도는 ‘사고’가 벌어졌다. 정상과 비정상 코스의 거리 차는 불과 20㎝였다. 부랴부랴 반환점을 다시 돌면서 시간을 지체한 결과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선수는 4위로 골인하는 데 그쳤다.
“임기가 있는 자리는 절반을 넘어서면 남은 기간이 훨씬 빨리 갑니다.” 교수 출신 공직자로부터 들은 얘기다. 임명 직후엔 적응하느라 시간 흐름이 더디지만 익숙해지면 관성에 의해 세월은 날아간다. 등산을 즐겼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산을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어렵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지났을 때 소회다. 그런 그도 하산길에서 한평생 민주화에 바친 생애에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라는 오점을 남겼다. YS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권 후반 역시 측근이나 가족의 구속, 몸담은 당의 분열이나 탈당 등으로 편치 않았다.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는 9일이면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돈다. 2년 반 동안 세 번 남북 정상회담과 두 번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유례없는 일이다. 비정규직 해소와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으로 약자 보호에 앞장섰다는 호평과 북한 미사일 도발, 경제지표 하락 등에 대한 지적이 서로 맞선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분열된 민심처럼 남은 임기를 두고도 “벌써 절반”과 “아직 절반”으로 시중 반응은 엇갈리는 듯하다.
‘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란 말이 있다. 100리를 가려는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무리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끝날 때까지 긴장감과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대통령 임기가 후반에 접어들면 국정 동력은 떨어지고 관심은 차기 권력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가 저서 ‘운명’에서 정권 말기 주변 행태에 섭섭함을 드러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잔여기간이 짧아지는 것에 반비례해 성과를 향한 조바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반환점이 확실한 모든 임기제 직책에서 ‘반구십리’의 정신은 그래서 더 필요한지 모른다. 막중한 국정의 최종 책임을 지는 대통령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