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올라 있는 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시점이 오는 27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이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지만, 이 기간 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엔 대체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비례대표 폐지를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의 입장이 워낙 강경한 데다 더불어민주당 등 다른 당의 속내도 제각각이어서다. 여기에다 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검찰개혁법안 처리와 맞물려 더욱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돼버렸다. 과연 이 짧은 기간에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풀 정치권의 지혜가 도출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최근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300석인 의원 정수를 10% 범위 내에서 늘리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현재 253석인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패스트트랙안 통과가 현실적으로 힘든 데다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려면, 의석수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예상대로 의원 정수 감축을 주장해 왔던 한국당은 펄쩍 뛰었다. 민주당 또한 표면적으로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 야당은 당연히 검토해볼 만하다는 태도다. 선거법 개정 협상에 새 변수가 등장한 셈이다.
사실 우리 현실에서 의원 정수 확대는 정치권 누구도 입밖에 꺼내기 힘든 금기어였다. 이른바 국민정서법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20대 국회는 여러 면에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놀고 먹는 국회라는 비난이 더욱 거세진 판에 밥그릇을 늘리겠다는 발상이 국민에게 먹혀들 리 없는 탓이다. 여야 4당이 논란 속에 애초 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면서 지역구를 축소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국민 여론이 따가울 게 분명한 데도 심 대표가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했으니 더욱 의아할 법도 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만 금기어였을 뿐 의원 정수 확대 주장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단순한 수치로만 비교하긴 힘들지만, 우리나라의 의원 정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1위로 하위권인 게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의 취지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거대 양당에 유리한 승자독식 구조의 현재 소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는 데 상당수 국민은 동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가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이를 찬성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의원 정수 확대는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이다. 다만, 반대의 가장 큰 근거인 국민 정서 문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민 상당수가 현행 선거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해법 중 하나인 의원 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까닭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정치권 스스로 불신과 혐오를 자초한 탓이 크다. 사실 유권자 입장에서야 국회가 제 역할만 한다면야 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쌍심지를 켜고 격렬 반대할 이유도 없다. 정치권 하기 나름인 것이다.
또 하나, 거대 양당은 국민 정서상 의원 정수 확대는 힘들다지만 과연 속내까지 그럴까. 민주당과 한국당은 표면적으로야 국민 반대를 거론해도 속을 들여다보면 별 아쉬울 게 없다. 현행 선거제를 유지하는 게 더 득이어서다. 민주당으로선 선거제 개혁 여론이 높고 대통령 의지가 강하니 어떤 액션이라도 취해야 한다. 그래서 이끌어 낸 게 패스트트랙안이지만 이는 당론일 뿐, 지역구가 줄어드는 의원들은 속이 끓을 수밖에 없다. 패스트트랙안 통과를 마냥 자신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의원 정수 확대에 찬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딜레마다.
한국당은 더 큰 문제다.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나머지 여야 4당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방안을 검토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 안에 합의하자 비례대표 폐지와 의원 정수 10% 감축안을 내놨다. 표면적으로는 국민 정서를 감안한 듯하지만 누가 봐도 현실성이 없는 안이었다. 여기에다 심 대표의 의원 정수 확대 주장을 거세게 비난했다. 이 또한 국민 정서를 들먹였지만 과연 한국당 의원들의 속내를 대변한 걸까. 한마디로 이도 저도 싫다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총선이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게임의 룰은 오리무중이다. 이대로라면 패스트트랙 통과가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총선은 어렵고 다음 또는 23대부터 적용하자는 안도 거론된다. 거대 양당으로서는 답답할 게 없겠지만, 온 나라를 들썩였던 선거제 개혁이 허망하게 물 건너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대 양당은 좀 더 솔직하게 의원 정수 확대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두고 적극적으로 협상할 필요가 있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