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은 힘의 산물이다. 힘은 기르면 반드시 생긴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밖에 없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다. 임진왜란 직전 왜의 사신이 숙소인 동평관에 남겨 놓은 낙서는 이러했다. “사마귀에게 먹힐 줄도 모르고 매미는 저렇게 노래를 해대는구나.” 임진왜란 10년 전 이탕개의 난 직후 이율곡의 십만양병설 상소가 무위로 끝났다. 1년 전 조선통신사를 통해 공작새 두 마리와 조총, 창, 칼을 상납한 대마도주가 보낸 사인은 무시되고, 통신사의 의견마저 동인이었던 김성일의 당장 편한 평화론에 눌렸다.
조선 건국 200년 평화는 조정과 백성 모두를 불감증환자로 만들어 버렸다. 무비의 결과는 처참했다. 명이라는 외세를 업고도 국민 3분의 1이 죽고, 국토의 80%가 유린당했다. 나라가 없어질 뻔했다.
세계는 패권전쟁으로 돌입했다. 군사력, 정보, 기술, 에너지와 무역전쟁이다. 세계 해양물류와 해양 패권의 핵심인 조선 산업도 새롭고 다양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예외가 아니다. 발등의 불은 선박 대기오염물질 규제 강화에 따른 파급 영향과 LNG 등 대체에너지 기술 선점·확보다. 군사력 증강 추세는 해양 분야에서 두드러져 해군 무기체계와 조선기술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AI 기술을 적용한 자율운항선박은 기술 융합과 경쟁을 통해 본격적인 개발과 시운전에 돌입했다.
상선이든 군함이든 모든 배는 사람처럼 완전한 독립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독립 생존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보유한 배를 제조하는 조선업 또한, 철강 기술부터 배 위치 인식·조종 기술, 척당 3000개에서 1만 개에 이르는 공정을 순서대로 관리하는 기술까지 망라한다. 공정마다 지원하는 전문 협력클러스터도 필요하다. 그래서 조선업은 이루기는 어렵지만 어느 한쪽 기술이 무너지거나 결핍되면 쉽게 붕괴해 지속되지 못한다.
LNG(액화 천연 가스)는 경제성과 청정성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보편적 에너지로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생산·저장·운송·공급의 가치사슬에 자본과 기술이 집중된다. 대용량 운송은 해상이 유일한 길이다. LNG운송선박이 뜨는 이유다.
LNG운반선의 경쟁력과 기술주도권도 유럽, 일본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중국이 넘겨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서시베리아야말LNG 프로젝트에 이어 기단반도의 아크틱(ARCTIC) II 프로젝트에 필요한 LNG선박 15척을 자국 건조로 법제화했다. 중국은 이미 ‘국수국조(중국 수출입 화물은 중국 배로 운송하고 중국 선박은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한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20세기 초부터 자국건조를 법제화했다. 자국등록선박의 자국건조원칙은 갈수록 보편화될 것이다.
조선산업의 축이 유럽, 일본, 한국으로 왔으니 중국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시대적 사양산업이니, 대학도 줄이고 최첨단산업으로 말을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국가의 힘이 군사력, 경제력, 소프트파워, 사이버파워로 구성되듯 조선산업 경쟁력도 전문성, 생산성, 관리력, 기술개발에 달렸다. 조선소만 건설하면 선박은 건조할 수 있다는 생각 탓에 실패한 사례는 의외로 많다. 조선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고 주변 인프라가 튼튼히 받쳐 주어야 한다.
최근 H사와 S사는 매우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뎠다. H사는 사우디아라비아 합작조선소인 IMI사와 초대형유조선(VLCC) 자국건조를 위한 도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S사는 러시아 ZVEZDA 조선소와 쇄빙 LNG선의 러시아 자국건조에 기술과 기자재를 제공하는 협업에 동의했다. 변화를 잘 파악하여 대응한 결과 얻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다. 자원 부국, 체제 전환국, 선진국,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자국건조의 협업자가 되는 전략이다.
자국건조지원 영업전략은 단기적으로 선박 수출 규모가 줄어드는 영향도 있지만, 조선산업 영역을 확대하고 과도한 수요공급 변동성을 완화하는 효과를 누린다. 우리 설계기술과 기자재가 공급되므로 기술 지배력을 갖게 되어 장기적 사업지 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조선해양산업계 판도를 바꾸는 지진과 해일이 다가오고 있다. IMO 환경규제로 촉발된 선박연료에너지의 변화, IT 와 AI를 응용한 스마트선박 경쟁 등은 에너지, 해운, 조선 및 관련 업계의 가치사슬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자국건조사업 영역 확대와 4차 산업 발전에 따른 조선기술 선도는 준비에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유럽, 일본, 중국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하면서도 ‘경적필패지리(輕敵必敗之理, 적을 가벼이 여기면 반드시 패하는 법이다)’들 강조한 말씀을 다시 새겨야 할 때이다.
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