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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브랜딩의 미학, 보르도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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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1-06 19:06:35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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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포도 품종이 가진 특성에 따라 다양한 향과 맛을 낸다.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산지의 토양, 기후, 양조방식 등 ‘떼루아’에 따라 다른 스타일을 가진 와인이 만들어진다.
보르도의 다양한 포도 품종.
프랑스 보르도지역은 기후 변화가 심하고 큰 날씨 편차로 일정한 품질의 와인 생산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불리한 기후 조건을 극복하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품종을 재배한다. 껍질이 두꺼운 포도는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껍질이 얇은 포도는 빨리 익고 서리와 축축한 토양에 저항력이 강하다. 포도 품종마다 날씨 변화에 다르게 반응하기에 여러 품종을 섞어서 만든다. 이렇게 같은 산지의 다른 와인을 더 좋은 품질로 개선하거나 개성을 살리기 위해 2가지 이상 조합하는 기술을 ‘브랜딩(Blending)’이라고 한다.

보르도는 8세기 이후부터 영국과 교역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다. 보르도 와인의 목표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테루아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각각 다른 밭·품종· 날짜에 수확한 포도와 오크통마다 다른 숙성 차이까지. 여러 종류 포도원액을 섞어 만드는 브랜딩 기술로 해마다 일정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한다. 보르도 와인의 오랜 전통인 브랜딩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다.

보르도지역의 대표적 레드 품종 ‘까베르네소비뇽’과 ‘멜롯’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국제 품종이다. 까베르네소비뇽은 꽃을 늦게 피우므로 봄철 서리 피해를 적게 입고 껍질이 두꺼워 부패나 병충해에 잘 견딘다. 산도와 타닌 함량이 높고 풍미가 진해 복합적인 맛을 지니며 장기 숙성할 수 있다.

멜롯은 부드러운 타닌과 함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들기 좋다. 일찍 수확하면 알코올 도수가 낮고 보디감이 적으며 높은 산도를 지닌다. 잘 익은 딸기 같은 붉은 과일 특성에 풀잎, 나뭇잎 향이 난다. 보르도에서는 주로 이런 품종의 장점을 조합해 와인을 만든다.

브랜딩의 핵심은 장점을 모으는 것이다. 장점이 모이면 단점은 사라지고 새로운 장점이 생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했다. 서로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말자. 상대 장점을 인정하는 ‘인간관계의 브랜딩’이 있다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와인은 나라와 산지, 포도 품종, 와이너리, 수확 연도와 양조방법 등 선택 폭이 너무 넓다. 예술에 비견되는 보르도 와인의 브랜딩 기술, 이런 와인을 만드는 양조자들의 자부심,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마시는 와인의 수준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와인을 모두 이해하고 구분해낼 필요는 없다. 이제 와인을 격식 있게 마셔야 촌스럽지 않다는 생각은 버리자. 와인 지식을 쌓을 수 있으면 좋지만, 편하게 와인 잔을 들고 호기심만 가져보자. 비싸고 유명한 와인보다 ‘내 입에 맛있는 와인’을 찾아 마실 수 있다면 우리 식탁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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