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조커, 反영웅의 귀환 /권혜경

10월 극장가 흥행영화, 사회적 불평등 겪으며 악당으로 변한 주인공

병든 우리 현실과 닮아…분노보단 공감 불러와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06 19:12:13
  •  |  본지 3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조커가 다시 돌아왔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 얼굴과 귀밑까지 치켜 올라간 핏빛 입술과 함께. 지난달 초순 국내에서 개봉된 이후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어선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 낸 악의 화신 조커의 모습에 입체감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알려진 대로 조커는 미국 DC코믹스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배트맨이 고담시를 지키는 선과 정의의 아이콘이라면 조커는 악과 광기의 화신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1990)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2008)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의 모습은 충실히 이런 구조를 따른다.

올해에 등장한 ‘조커’는 이제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악당 조커의 ‘탄생’에 초점을 맞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악당으로의 ‘변모’를 다루고 있다. 그 시작은 고담시의 평범한 광대 아서 플렉으로부터 비롯된다. 망상에 사로잡힌 노모와 단둘이 살며 미래의 코미디언을 꿈꾸는 그에게 하루하루를 버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광대 분장으로 가게 홍보를 하다 십대 청소년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하고 동료가 준 총을 몸에 지닌 채 일하다 발각돼 일자리가 끊긴다. 어릴 때 당한 폭력으로 뇌를 다친 그는 현실과 망상 세계를 오가고 수시로 터져 나오는 제어불능의 웃음으로 오해를 산다. 주기적으로 받던 극빈층 대상 정신과 무료상담 역시 예산 삭감으로 중단될 형편이다.

영화 전반부에서 아서 플렉이 처한 출구 없는 암울한 현실은 관객을 힘들게 한다. 조커 역을 위해 체중을 23kg이나 뺀 호아킨 피닉스의 깡마른 몸과 공허한 표정, 예기치 않게 터져 나오는 발작적인 웃음 역시 한몫한다. 하지만 후반부 지하철에서의 우발적인 살인 이후 그는 완전히 변모한다. 자신을 억누르던 모든 억압에서 기꺼이 자유로워지고자 한 것이다. 화려한 양복 차림으로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오는 그의 모습에선 이제 더는 위태롭고 우울하던 아서의 모습은 없다. 악당 조커의 탄생이다.

나아가 조커의 존재는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고담시에 폭동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영화의 말미 아서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이자 고담시의 거물 토마스 웨인을 살해하는 장면은 영화 ‘조커’의 종결부이자 ‘배트맨’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어린 브루스 웨인이 곧 미래의 배트맨이기 때문이다.
영화 ‘조커’는 평범한 인물에서 조커라는 희대의 악당으로 변모하는 입체적 주인공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나온 DC코믹스나 마블 시리즈의 영화와는 다르다. DC코믹스의 슈퍼맨이나 배트맨, 마블 시리즈의 아이언 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은 강력한 힘과 빼어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다양한 초능력을 지닌 그들은 선과 정의를 대변하며, 혼자서 또는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뭉쳐서 악과 불의에서 미국과 인류를 구원해 왔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국의 영화 전문 TV 채널인 ‘필름 4’와의 인터뷰에서 DC나 마블 시리즈의 슈퍼 히어로 영화가 한 장르로 자리 잡았음을 인정한다. 그는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과도한 CG 장면과 스펙터클로 가득 찬 이 영화들이 마치 “같은 천에서 잘라낸” 판박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와는 달리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핸드메이드 영화”를 지향하며, 그러한 방식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조커’이다.

평범한 광대 아서 플렉이 희대의 악당 조커로 거듭나는 과정은 토드 필립스의 완벽에 가까운 연출과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으로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고담시 모습 또한 관객의 공감도를 높인다.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극심한 빈부 격차나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미비, 그리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집단 시위와 폭동 등은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고담시는 단순히 ‘허구적’인 장소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다. 시민들의 목소리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집중하는 토마스 웨인이 화려한 정장 차림으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를 관람하는 장면은 아이러니의 극치이다.

‘조커’는 지난 8월 말에 개최된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DC코믹스의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가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미비한 사회적 안전망을 소재로 다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동일한 맥락에 놓인다. 견고한 자본주의의 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봉 감독이 기생과 공생의 방식을 선택했다면, 토드 필립스는 좀 더 직접적으로 조커라는 반영웅을 출현시킨다. 절대 악의 화신 조커가 아니라 출구 없는 도시 빈민 아서 플렉으로부터 어느덧 악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커의 변신이 슬픈 이유이다.

동서대 영어학과 교수·민석도서관장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에코델타 스마트시티 24일 착공식, 문재인 대통령·아세안 10개국 정상 참석
  2. 2부산 오페라하우스 4개월만에 공사 재개
  3. 3황령산 유스호스텔, 난개발 신호탄 되나
  4. 4부산대 경영학과 262점·기계공학부 257점 지원 가능
  5. 5부산 한·아세안정상회의 선물로 ‘에밀레종’ 웬말?
  6. 6“한달째 못깨는 아영이, 그래도 희망봐요”
  7. 7 부실 환경영향평가 제재수단 미흡…제2 대저대교 못막는다
  8. 8김해 미분양 감소세…부동산 시장 급화색
  9. 9장안신도시 공공택지, 우미글로벌 최종 낙찰
  10. 10[CEO 칼럼] 부산 증권박물관 개관과 ‘금융 로드’ /이병래
  1. 1한국 국적 선박 2척 포함된 선박3척 예멘 후티 반군에 나포
  2. 2문현3동 성지경로당 개·보수 공사로 행복가득한 경로당 선물
  3. 3용호2·4동 주민자치회, 찾아가는 작품 전시회 개최
  4. 4문재인 대통령 오늘 8시 '국민과의 대화' 출연…"경청의 자리될 것"
  5. 5탁현민 “국민과의 대화 나라면 안했다” 발언, 연출자적 어려움 표현 [전문]
  6. 6소방관 내년부터 국가직 공무원 된다, 국회 본회의 통과
  7. 7산·학·관·민 공동위원장 21인, 부울경 혁신성장 나서 「동남권발전협의회」 첫 발기인총회 개최
  8. 8대연6동 바르게살기위원회 환경정비
  9. 9금정구-금정시니어클럽, 서1동 소방안전 “함께 지켜요”
  10. 10금정구, 빛나눔봉사단과 함께 취약계층 전기·소방시설 안전점검
  1. 1‘더 뉴 그랜저’ 출시
  2. 2비즈니스 강소기업 <8> 글로벌마케팅네트웍스
  3. 3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 소셜벤처 해외 개척 지원
  4. 4사상·진주 상평산단에 상상허브 조성
  5. 5블록체인 실생활 구현…내년 여름 해운대서 체험한다
  6. 6해외로 뻗어가는 르노삼성 트위지, 지역사회·중기와 상생모델 만들어
  7. 7부산경제진흥원, 50인 미만 제조업 사업주 ‘산재 예방 교육’
  8. 83분기 부산경제 ‘악’소리…고용률 57% 전국 최저
  9. 9부울경 상장사 3분기 순익도 1년새 반토막
  10. 10장안신도시 공공택지, 우미글로벌 최종 낙찰
  1. 1‘처음학교로’ 일반모집 시작 이후 모집 절차, 탈락자는?
  2. 2꼭대기층까지 솟구쳐 오른 엘리베이터… 갇혔던 부자 부상
  3. 3밤기온 뚝, 춥다고 캠핑시 텐트 안 불피우면 안돼요
  4. 4왜 식당 주인들은 ‘노튜버존’을 선언했나?
  5. 5조현범 한국타이어 대표 '배임 횡령 혐의' 구속영장 청구
  6. 6부산 남구, 정재승 교수 초청 등대빛아카데미 성공적 마무리
  7. 7부산대 「제2회 김진재 SF어워드」 공모전 성황리 마감
  8. 830세 어린 베트남 아내 살해 후 암매장한 50대 한국남성 체포
  9. 9고유정 답변 거부 “검사님 무서워서 진술 못하겠다”
  10. 10민식이법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12만 명 이상 동의
  1. 1유상철 췌장암 4기 치료 중 “남은 2경기 최선 다할 것”
  2. 2대한민국, 브라질과 평가전 앞둬... 브라질 대표팀 선발 명단은?
  3. 3한국 브라질 피파래킹·중계는?
  4. 4브라질 대한민국 중계는… ‘한국 역대전적 1승4패, 하지만 변수는 있다’
  5. 5대한민국, 강팀 브라질과 맞붙는다... 한국 축구대표팀 원정경기로 더욱 열세
  6. 6이탈리아 71년 만에 한 경기 9득점…유로2020 예선 전승 마무리
  7. 7LPGA 최대 우승상금 쟁탈전…고진영 전관왕 ‘GO’할까
  8. 8“휴스턴, 스카우트에 카메라로 사인 훔쳐라 지시”
  9. 9BNK, 김진영 영입…‘스피드 농구’로 확 바꿔
  10. 10벤투호, 19일 ‘몸값 7배’ 삼바군단 브라질과 맞대결
국제신문-KLJC 공동 인터뷰
강필구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 "진정한 지방자치 위해 정당공천제 폐지돼야"
국제신문-KLJC 공동 인터뷰
신원철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 “시도의회 인사권독립과 전문인력 도입 절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부산의 원도심, ‘문화도시’와 어울리지 않는가
감동스러운 도시건축을 만나고 싶다
기고 [전체보기]
고양이와 쥐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 /이용희
지역민과 마을활동가가 함께 만든 새뜰마을 /오광석
기자수첩 [전체보기]
365일 지스타 열리는 부산 기대 /배지열
아직 설익은 공무원 공로 연수제 /김성룡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솔로몬 심판’과 오늘 우리의 송사들
귀농 귀어 귀촌에도 균형발전 없는 나라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사랑방 음악, 더 풍성해지길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피리와 하프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수산인의 웃음을 보고 싶다 /유정환
‘외투 불균형’ 에 뒷짐 진 정부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밀양 표충비의 땀
2세 정치인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中 ‘문학 한류’ 이끄는 정지용의 울림
가을과 다섯 수레의 책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특별한 갈치구이 한 토막
베트남의 포와 반미
사설 [전체보기]
자동폐기 위기 지역법안 통과 정치권 적극 나서라
인적 쇄신 요구에 귀 닫고 내부 싸움 바쁜 한국당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정의를 갉아먹는 ‘합법적 불공정’
‘소산소사’의 사회, 고용연장이 해법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인생 2막에 이룬 성공
절망 속에서 탄생한 명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기생충
정신 줄 놓지 말고 다시 도전하자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니가 가라, 험지’
선거제 개혁 물 건너 가는 건가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가을! 그 오랜 기억들
가을을 여는 모차르트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브랜딩의 미학, 보르도와인
우리 삶은 아름다운가 - 토스카나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조선 시대 만다라 문양 민화
호생관 최북의 ‘지두해도(指頭蟹圖)’
  • 충효예글짓기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