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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응답하라 민주주의 /이민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07 19:10:06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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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함성이 30년 만에결실을 맺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올해 첫 국가기념일 지정을 통해 희생자들의 선한 의지와 투쟁의 결과에 국가가 응답했다. 학생, 시민, 노동자, 약자 모두에게 덧씌워진 폄훼의 굴레를 벗었다. 내 삶을 바꾸는 행동이 무엇인지, 어떤 결말로 역사에 남는지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 시작에 부산의 책 읽는 시민들이 있었다. ‘양서협동조합’의 역사가 바로 그날들을 소환하는 이름이다.

1977년 11월 16일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첫 출발을 알린 뒤, 1978년 4월 8일 창립총회를 열고, 곧이어 22일에 보수동 서점 골목에 협동서점을 열었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책 읽는 시민이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돕는 데 힘을 보태는 운동을 시작해, 창립 3년 만에 500명이 넘는 조합원이 함께한 독서운동의 물결이 부산에서 시작된 것이다.

책을 매개로 자신의 삶과 이웃과의 문화,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던 깨어 있는 지식을 나누려고 했던 이 독서모임은 군사정권에 의해 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의 배후로 지목되어 조합원 300여 명이 연행되고,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했으며, 조합은 11월 19일 강제해산에 이르게 된다. 조합원들 역시 풀려난 이후에도 핍박을 받았다.

부산 중구 보수동에 위치한 중부교회의 독서클럽과 양서협동조합 협동서점에 모인 학생, 청년, 비판적 지식인들이 함께 토론하고 책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변화시켜간 공동의 경험은 지금 촛불정신의 시대 의식에 다름 아닐 것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의 흐름이 변화하는 것을 체감하며 자신의 역할이 무언지 고뇌했을 자신의 시간. 그리고 거리로 나와 함께한 연대의 순간이 역사를 또 한 번 바꾸어 놓았다.

책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스스로 굳건할 수 있는 의지를 키우던 이 거리. 이 서점이 있는 곳이 바로 오늘날의 ‘보수동책방골목’이다. 중부교회도 그 자리에 있다. 누구나 함께 경계를 허물며 책 읽는 이들의 저녁, 연대의 힘이 가져온 힘은 87년에 이르러 다시 한번 생명력을 증명한다. 지식전달의 수단을 거래하던 책방골목에서 거래된 책의 수보다 책방골목의 책문화가 키운 사람이 더 많으리라 믿고 싶다. 그중 한 사람,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름. 이른바 ‘박종철 학교 가는 길’로 불려도 좋으리라.

이곳 보수동책방골목을 오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혜광고등학교 졸업생 박종철 군은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해 민주주의를 위한 대학생들의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민주주의와 대통령직선제를 외치던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에 대응한 경찰의 폭력과 고문에 급기야 죽임을 당한 박종철 열사. 그의 죽음에 불법적인 고문과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고, 거리로 나온 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는 전국으로 퍼졌다.

그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을 밝히고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던 시민들, 학생들에게 국가는 최루탄 발포와 폭력 진압으로 대응했다. 거리에서 또다시 청년들이 죽어갔다. 부산의 아들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국가가 사과하라는 요구를 전국에서 외치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시위에 동참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고 곧 죽음을 맞았다.

죽음으로 웅변된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놓을 수 없었던 국민은 그 희생에 ‘응답’하며 폭발적 연대와 희생을 나누며 시위에 동참했다. 드디어 1987년 10월, 온 국민은 한마음으로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 우리 국민이 누리는 ‘기본인권, 자유언론 창달,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등이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고 시민 각자가 연대함으로써 얻게 된 결과들이다.

11월이다. 인디언 달력에서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세월호 참사 당시 은폐된 학생들의 죽음이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응답하라! 잊지 않았다고,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해산되었으나 다시 협동서점의 불빛 아래 책을 펼친 전교조 교사 고호석을, 독서와 통기타 연주를 좋아하던 박종철을, 세월호 참사를, 등이 타오르며 죽어간 김용균을. 그리고 기도하라. 잊지 않겠다고. 지금 이 순간도 민주주의를 외치며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죽어가는 홍콩의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을 위하여! 박종철 학교 가는 길을 따라, 이 이름들을 부르며 산복도로를 걷는다.

시인·낭독서점詩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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