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의 제목만 보면 의문투성이다. 부산의 원도심이 정확히 어디인지, 문화도시가 도대체 무엇인지, 또한 왜 원도심과 문화도시가 어울려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짧은 글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난제 아닌 난제 앞에서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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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항구도시들에 있어 바다는 생명과 같은 곳이다. 대다수 항구도시의 형성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바다와 접하지 않았다면 그 도시의 현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고, 도시 역사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그만큼 항구도시들은 바다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항구도시의 내륙에 일반적으로 위치하는 도심의 입지를 이해하게 한다. 해양을 중심으로 발달해 온 대부분의 항구도시는 해양과 연결된 곳에 도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도시는 도심과 항구가 공간적으로 통합되어 있고 또 하나의 기능으로 작동한다. 부산도 내륙의 도심과 항구가 단일 공간으로 작동했던 전형적인 항구도시로 정의된다. 그래서 부산은 원도심을 논의할 때 반드시 항구를 포함하여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항구도시의 원도심에 대한 정의를 이해했으니, 본격적으로 부산 원도심의 실상을 살펴볼 차례다. 부산항의 매축은 1902년부터 시작되었다. 연이어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원도심 형성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철도에 이어 중앙로, 충장로 등 여러 도로가 차례로 더해지면서 원도심을 구성하는 도심과 항구는 공간적으로 기능적으로 또한 경관적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항구 존재의 핵심 이유가 ‘물류 운송’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지만, 시민의 마음까지 단절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심에서 지척에 항구를 두고 있었음에도 항구를 인식하지 못한 채, 100여 년의 시간을 그냥 보내버린 것이다.
사실 항구를 포함한 부산의 원도심에는 17세기 이후 초량왜관에서 움트기 시작한 글로벌 문화, 물류항구이자 또한 대한민국 수산업의 메카로 이름나며 확보된 산업문화, 한국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피란시절의 근대문화, 195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부활을 책임졌던 국재(國財) 재건의 경제문화, 19세기 말 개항기부터 누적되어 온 영화, 음악, 문학 등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도심 쇠퇴가 본격화되면서 그나마 작동하던 문화의 켜들이 급속도로 힘을 잃어버렸고, 이를 살려 보려는 각고의 노력도 파편화되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재래물류항구(북항)의 신항 이전 추진은 원도심 변화에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심과 항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하나로 모으질 못했고, 관리주체 또한 달랐기에 또다시 10여 년을 보내 버리고 말았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원도심 속의 분리된 항구와 도심을 하나로 뭉쳐보려는 노력이 여기저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근자에 들어 도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하드웨어보다는 시민의 삶과 연계되어 태동되는 소프트웨어, 즉 ‘문화’가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요즘 우리는 ‘네트워킹’에 주목하고 있다. 공간적 차원에서의 연계와 연결을 넘어, 더 나아가 통합과 복합 그리고 융합이라는 질적 차원에서의 네트워킹에 관심 갖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수평 보행권을 확보하기 위해 건널목을 만들고, 녹지와 공원을 연결하는 그린웨이를 조성하고, 입체 브리지와 덱을 설치하는 등 단절된 물리적 공간의 네트워킹에 머물고 있다.
풍경과 시선, 역사와 스토리 등 무형의 가치는 연결하지 못한 채 네트워킹이란 이름만을 위안으로 삼고 있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현실이다.
이제 부산의 원도심, 즉 도심과 항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공간 연결에 머무는 하드웨어 중심의 네트워킹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 즉 문화와 사람을 중심으로 단절되고 구분된 도심과 항구를 하나로 융합시켜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산만하게 또한 파편적으로 진행돼 가짓수는 많으나 정작 문화에너지가 모이지 않는 도심의 각종 문화사업과 항구의 미래 에너지 간에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만 갇혀 고착돼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도심의 문화에너지가 흐르고 넘쳐 항구로 스며들 것이고, 항구의 옛이야기와 미래의 비전들이 도로와 철도를 넘어 도심으로 밀려올 것이다.
이런 상상을 ‘부산 원도심의 신(新)문화 잇기’라 부르면 어떨까. 신문화 잇기는 무엇보다 먼저 ‘역사와의 관계 잇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17세기 초량왜관에서 시작된 원도심의 이야기들이 3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심과 항구 전역에 걸쳐 그 켜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층층이 쌓여있기에, 이 켜들이 새롭게 만들어질 원도심 문화의 바탕이자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다음은 ‘시민들과의 관계 잇기’다. 도심과 항구가 함께 다시 살아 움직이려면 다양한 목적을 가진 시민이 이곳을 찾게 해야 한다. 신명 나게 또 여유롭게 원도심을 즐기려는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머물게 해야 한다. 즉 원도심은 문화를 공감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모두에게 열린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조각난 문화들의 관계 잇기’다. 부산 원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문화를 결합하는 일과 이를 북항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진행 중인 항구의 새로운 변화와 연결하자는 것이다. 분명 원도심 전역에 에너지가 넘치는 ‘신문화화(新文化化)’의 계기가 만들어지고 또 펼쳐질 것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고, 문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라 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자명한 진리이자 명제다. 부산 원도심은 여느 도시와 지역보다 문화를 주제로 미래를 키우고 풀어갈 수 있는 다양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원도심과 문화의 결합 즉 부산 원도심의 문화도시로의 지향은 하드웨어 개발 중심의 한계에 봉착한 부산이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는 큰 날개가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 도전 또 도전해야 한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