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5개월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지난 선거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 참 빠르다. 여야 각 당은 전략 짜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현직은 “죽기보다 싫다”는 낙선의 쓴잔을 마시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당 공천을 확보하고, 본선 승리를 거머쥐는 게 지상 과제다. 어느 ‘정치 9단’의 말에 따르면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고 하니 이해는 간다.
선거에서 감동을 주는 묘미 중 하나가 물갈이다. 수준이 떨어지는 선량의 교체 작업은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20대 국회를 지켜본 유권자들의 바람도 다르지 않다. 국회 입성을 노리는 신인과 재입성을 위해 절치부심하는 전직들의 전투력도 만만찮다. 특별히 21대 총선의 부산 선거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는 형국이다. 2016년 부산의 총선 과정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전개된 탓일 게다.
지난 총선에서는 철옹성 같았던 특정 정당의 독주체제를 부산 유권자들이 일시에 허물어버렸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지금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세력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체제의 10년간 정권 유지 때도 볼 수 없었던 부산 선거판의 변혁이었다. 현 자유한국당 세력의 후퇴는 한쪽으로만 기울어졌던 지역 정치권에 어느 정도 균형을 안긴 결과를 낳았다. 부산의 국회 권력이 특정 방향으로 다시 쏠릴지, 아니면 세력 균형 추세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부산의 여당 국회의원 대부분은 낙선을 거듭한 끝에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보궐선거를 통해 배지를 단 1명을 포함한 6명의 여당 의원 중 5명이 초선인 이유다. 그들에게는 다가오는 총선이 또 다른 도전의 장이다.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전재수(북·강서갑) 의원이 사석에서 “내년에 낙선한다면 운이 좋아 당선됐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으니 앞선 선거 때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할 처지”라고 말한 대목에서 절박함이 읽힌다. 전재수 의원과 세 번 맞붙은 한국당의 박민식 전 의원은 두 번 이기고, 한 번 패배한 뒤 낙선이 얼마나 가혹한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친밀하게 보이려는 일부 행동을 놓고 ‘요즘 박민식이 저렇게 산다’는 시선도 있어 씁쓸하다”고 전했다.
지난 총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한국당 전신)과 민주당은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당을 갈아 탄 조경태(사하을) 의원을 제외하곤 지역구 국회의원을 제대로 배출해보지도 못한 민주당은 간절함이 있는 후보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새누리당은 부산의 현역 전원을 공천하는 강수를 뒀다. 역대 총선에서 현역 40%대가 물갈이됐다는 점에서 진기록을 세운 셈이다. 새누리당은 본선에서 죽을 쑤는 성적표를 받았다. 민주당은 18석의 부산 의석 가운데 5석을 획득하는 성과를 올렸다. 새누리당의 지역 의원은 여전히 수적 우위를 점했지만, 민주당 의석수가 지닌 무게감은 달랐다. 지난 30년간 볼 수 없었던 부산 여야 힘의 균형이 지닌 정치적 의미는 엄청 컸다.
또다시 총선 시즌이다. 인적 쇄신 요구 목소리가 각 당 안팎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 현역 128명 중 25% 이상 물갈이하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인적 쇄신 바람이 좀처럼 불지 않았던 한국당에서는 내부 폭발이 먼저 일어났다. 이어 황교안 대표가 그제 본지와 한 인터뷰에서 “중진과 당에 책임 있는 사람은 편한 곳만 지향하면 안 된다”며 ‘영남권 희생론’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영남권과 서울 강남 3구 등을 지역구로 한 3선 이상 의원들이 용퇴하거나, 험지에 출마하라”며 리스트까지 나돌았다.
한국당 내부에서 결단을 요구받은 3선 이상 중진 리스트에는 16명이 올랐다. 한국당 전체 의원 109명 중 3선 이상 35명(32%) 중 절반가량이다. 그런데 16명 중 부산 의원은 7명(12명 중 58.3%)이나 된다. 반면 6선의 김무성(중·영도) 의원만 불출마하고, 나머지는 용퇴할 의사도 없을 뿐더러 지역구 고수 의지도 확고한 눈치다. “이기는 게 중요하다”는 반응이다.
원내 정치 활동 경험이 축적된 다선 의원들을 무조건 배척할 일은 아니다. 3선 이상을 딱 잘라 용퇴나 험지 출마를 종용하는 것도 너무 획일적인 잣대로 비친다. 존재감 떨어지는 초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선수를 쌓아온 부산 중진들의 정치적인 무게감에 의심을 눈초리를 던지는 시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번 국회는 국민의 불신임까지 받은 마당이다.
결국 시민의 선택에 달렸다. 지난 부산 총선에서 유권자가 기울어진 정치판의 균형을 택했다면 내년 선거의 선택지는 물갈이 쪽으로 쏠린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전국적으로 연령, 세대, 지지 정당 불문하고 세대 교체 요구 바람까지 거세게 일고 있다. 물갈이는 선거의 존재 이유이자 정치 발전의 자양분이 아닌가. 흥미진진하다.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