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국 ‘진실성’에 근무한다. 그가 하는 일은 독재 정권의 현 정책에 맞추어 역사를 위조하는 것이다. 독재자의 의지에 따라 정책은 수시로 바뀌고, 그때마다 ‘런던 타임스’ 등 신문을 비롯한 모든 과거 기록을 수정한다. 거짓을 생산하는 정부 기구의 이름이 진실성이란 게 역설적이다. 역사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재단될 뿐이다. “짐이 곧 국가”라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말처럼, 역사는 독재자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이런 ‘역사 수정주의’는 ‘1984’에만 나오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의 지배욕과 함께 끊임없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되풀이해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실존하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2006년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의심할 여지없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라야마 담화를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며 표변한 뒤 제국주의 침탈과 가해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거 부정도 역사 수정주의의 일종이다. 그는 취임 후 전임자인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치적 지우기에 올인했다. ‘오바마 케어’ 같은 건강보험정책부터 미국의 참여 아래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약과 이란핵합의 탈퇴에 이르기까지 오바마의 손길이 닿은 모든 과거 정책을 없었던 일로 만들려 한다. 오바마만 아니면 된다는 ‘ABO(Anything but Obama)주의’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무역·환경분쟁 등에서 보듯 오히려 역효과만 커질 따름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어제로 탄생 100년을 맞은 ‘의열단’에 대한 인식에서도 역사 수정주의를 목격한다. 의열단은 1919년 11월 10일 창단 이후 1929년 12월 2일 해산될 때까지 일제 수탈기관 폭파 등 34건의 무장투쟁을 벌였다. 그 공적이 너무 혁혁해 의열단과 의열단장 김원봉(1898~1958)을 제외하고는 독립운동사를 못 쓸 지경이다. 그런데도 김원봉이 북한 정권에 몸담았다는 이유로 의열단은 역사적 평가에서 배제되고 있다. 아무리 이념의 장막을 친들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 사라질 수는 없다.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다. 이를 바탕으로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야 비로소 온전한 역사가 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