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시인 구르몽의 시구처럼 ‘이른 죽음처럼 기쁘고 달콤한 가을’이다. ‘가을’에 ‘지역 문인 이름’으로 열리는 문학축전이나 문학상 행사가 몇 있다. 규모가 크고, 부산을 대표하는 것으로 요산 김정한 선생을 기리는 요산문학축전·요산문학상이 있다. 시 부문은 최계락문학상과 김민부문학제(김민부문학상)가 있다(이주홍문학상은 매년 봄 시상한다).
요산문학축전과 최계락문학상은 역사와 규모, 후원이 있지만 김민부문학제(김민부문학상)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김민부 시인은 1941년 3월 14일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나 부산고 2학년 때인 1956년 8월 첫 시집 ‘항아리’를 냈고, 17세이던 195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균열’이 당선되며 등단한 천재 시인이다. 성남초·부산중·부산고,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나왔고, 동국대 국문학과에 편입해 1962년 졸업했다.
졸업 뒤에는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 시분과위원장을 맡았고, 부산문화방송(부산MBC)에 공채 1기 PD로 입사했다. 지금도 방송되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자갈치 아지매’도 그가 1964년 기획했다. 결혼도 1965년 4월 부산에서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재로 서울에서 1972년 10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만 31세였다. 요절한 천재, 김민부 시인을 추모하기 위해 2011년 10월 27일 1회 김민부문학제를 열었다. 올해도 제9회 김민부문학제와 제5회 김민부문학상 시상식을 지난달 27일 중구 크라운호텔에서 열었다.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시와 노래는 우리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영원한 ‘기다림’이 되었다.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회성 이벤트성보다 다시 찾을 수 있는 추억·스토리·공간을 가꿔야 한다. 예술문화 중심에 사람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김민부 시인의 흔적은 아주 강렬해 사람을 끌어들일 잠재력이 크다. 인근 경남에서 기리는 김달진 시인, 통영·거제가 보여주는 유치환 시인에 대한 관심과 예우, 하동·통영·원주가 박경리 선생을 기리는 정성을 참고할 수 있다. 김민부 시인 또한 그런 자산과 저변을 가졌다. 부산이 낳은 천재 시인이며 “일출봉에 해 뜨거든”으로 시작하는 국민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작시한 주인공이다. 초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자갈치 아지매’를 기획한 공로도 기억해야 한다.
2013년 3월 동구 산복도로 이바구길에 ‘김민부 전망대’가 생겼다. 2014년에는 출간 58년 만에 선생의 첫 시집 ‘항아리’의 원본이 발굴됐다. 2017년께에는 많은 예산이 배정돼 김 시인과 관련된 생활문화센터도 세울 예정이었다. 김민부 전망대 바로 아래 부지를 확보했고, 유족도 자료를 조건 없이 기증했다. 필자도 실무자 회의에 몇 번 참석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뒤 계획은 흐지부지됐고, 그 자리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시설이 들어섰다.
얼마 전 김민부 전망대에 가보았다. 풍경이 의외였다. 계단 입구 바닥에 조그만 ‘김민부 전망대’ 표지 타일이 부착돼 있는데, 목재 벤치가 설치돼 그마저 반쯤 가려져 있었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 언제나 흘러나왔던 김민부 전망대였는데, 많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유명한 이생진 시인이 김민부 전망대 방명록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때 ‘인상 깊은 부산 명소’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곳’으로 선정됐던 명소였건만. 지금은 옛 성벽처럼 바래고 녹슨 등대와 ‘기다리는 마음’ 시만 흐릿하게 걸렸고, 어둡고 황량한 콘크리트 구조물만 서 있었다. 예술문화 자원의 가치가 날로 커지는 지금, 우리 고장이 낳은 예술가를 사랑하는 일은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소중한 실천이다.
시인·김민부문학제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