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편부당한 판결이 나무랄 데 없는 학자이자 독일 시민인 송두율 교수가 국내 정치적 싸움의 희롱물이 되는 것을 막아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세계적인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재독 학자 송 교수의 1심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의 일부이다. 송 교수의 스승인 하버마스는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린 국가보안법을 다시 한번 적용할 경우 한국의 명성이 국제 여론에서 입게 될 손실 역시 헤아려 줄 것’을 간곡히 청했다. 송 교수는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고국 땅을 밟지 못하다 2003년 귀국과 동시에 구속됐다. 5년 뒤 대법원 확정 판결로 송 교수가 명예회복하기까지 이 사건은 우리 사회를 좌우로 갈랐지만,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하버마스라는 학자를 재인식시키는 계기도 됐다.
재판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은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며 탄원서를 내는 경우가 많다. 억울하다며 결백을 주장하거나, 딱한 가정사 혹은 어쩔 수 없이 범죄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연명서를 함께 제출하기도 한다. 높은 법대에 앉은 법관도 사람인지라 진정이 담긴 글을 읽고 정상을 참작하곤 해 ‘잘 쓴 탄원서는 변호사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세계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탄원서라면 프랑스 문호 에밀 졸라가 파리 ‘로로르’지에 간첩으로 몰린 드레퓌스의 억울함을 공개서한 형식으로 발표한 ‘나는 고발한다’일 것이다. “남편은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며 엽기적 성범죄자 조두순의 아내가 낸 탄원서처럼 잘못된 탄원은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친형 강제입원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법원 최종 심리를 앞두고 그의 구명을 요청하는 탄원서가 줄을 잇는다. 중증외상 전문의인 아주대 이국종 교수를 비롯해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최근엔 ‘친문삼철’ 중 한 명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까지 가세했다. “이재명을 잃는 건 정치사의 큰 비극” “꼭 필요한 정치인”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대선 후보급 현직 여당 단체장을 위한 공개적인 탄원이 재판부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공인 중의 공인인 정치인 도지사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 가정사로 촉발된 사건에 또 다른 공인들의 ‘줄 탄원서’가 합당한지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교수를 빼면 하나같이 ‘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지사의 탄원서가 힘도 돈도 없는 서민이 마지막 구명줄처럼 매달리는 탄원서와는 다르게 보이는 이유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