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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와인 패러독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20 18:58:55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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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은 19세기 산업혁명을 이끈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기계에서 시작해 전자기술, 디지털과 모바일까지 이어져 온 디지털 혁명은 모든 산업의 발전을 이끌고 있으며 많은 분야에서 전통적 질서를 허물었다. 오늘날 이것을 ‘파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찰스 핸디는 ‘패러독스의 시대’라는 책에서 기술 발전과 같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포르투갈 도우로강변의 포도밭.
와인 양조에 쓰이는 포도는 넝쿨식물의 열매로 여러 종으로 나뉜다. 주로 유럽종 포도로 잘 알려진 샤르도네,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같은 ‘비티스 비니페라’와 미국 동부에서 자라는 식용품종 ‘비티스 라부르스카’ 등이 있다.

서로 다른 유럽종인 비티스 비니페라와 미국종인 비티스 라부루스카를 ‘결합(marrying)’해 두 가지 종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든 종을 ‘잡종(hybrids)’이라 한다. 유럽연합에서는 이런 잡종을 고급 와인 생산에 쓰지 못하게 하지만, 혹한이나 습기가 많은 환경에 잘 견디기에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종교배(crossing)’는 종은 같지만 다른 품종끼리 결합을 통해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종교배를 해도 자손이 반드시 부모가 가진 특징만 물려받는다고 할 수는 없다. 일단 이종교배로 새 품종이 탄생하면 꺾꽂이를 통해서만 번식할 수 있고, 이종교배를 다시 할 수 없다.

잡종교배와 이종교배가 수정을 통한 유성생식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복제(cloning)’는 원하는 특성을 지닌 묘목을 꺾꽂이하는 무성생식으로 이뤄진다. 사람 조직세포를 떼어내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처럼 똑같은 특성을 가진 묘목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 꺾꽂이해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수세기 동안 이런 복제를 통해 적합하지 않은 품종은 제거되고 현재의 전통적인 국제 품종이 만들어졌다.

와인 양조를 위해 중요한 포도의 특성은 수확량, 질병 저항력, 과일 캐릭터, 당도, 탄닌과 산도 등이다. 포도의 씨도 사람처럼 모체의 유전 형질을 갖지만, 한쪽을 더 닮을 수도 있고 양쪽 부모가 지니지 않은 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와인양조자들이 원하는 특성을 가진 클론을 택해 더 나은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이상적인 클론을 개발할 때는 피노누아처럼 역사가 오래되고 우수한 특성을 가진 품종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확하게 복제해도 예기치 못한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피노블랑과 피노그리 품종은 그들 고유 품종이 아닌 피노누아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탄생한 것이다. 필자는 이를 ‘와인 패러독스’라 부른다. 이런 변화로 생기는 미묘한 차이를 “같은 품종 다른 클론”이라 하며 한 품종 내에서 특성이 뛰어난 새로운 클론이 나올 수 있다.
현대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복합적인 사회다. 이질적인 것의 뒤섞임, 조화, 다양한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하는 퓨전 시대. 기존 장르를 파괴하고 새 장르를 만들어 내는 ‘변화의 패러독스’가 필요한 시대다.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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