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연말 재정 집행에 막바지 열을 올리고 있다. 중앙정부는 말할 것 없고 지방정부도 쓸 수 있는 돈을 모두 쓰라고 압박한다. 그래도 올해 경제성장률 1%대 추락을 막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런 성장률 수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0년 만이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자리 해결을 못 했다고 실토할 정도로 고용 위기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혁신성장은 성과를 못 냈고 기업은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다. 소득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시중은행에 예금이 몰리지만 중소 벤처기업은 돈을 못 구해 발을 구른다. 잠재성장률까지 꺼져간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2년 반 전을 떠올려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공정과 정의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공정과 정의를 통해 만들고 싶었던 ‘나라다운 나라’의 최종 목표는 국민이 편안한 사회였을 것이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한국의 경제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정부 여당은 지난 2년 반을 ‘과거를 극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남은 2년 반 동안은 성과를 내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책수정은 않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입장을 유지했다.
대통령은 당선돼 청와대 시스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고립된 환경과 싸워야 한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낳은 숙명 같은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설계자 ’인 박형준 전 의원은 한국 대통령이 처한 실패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두 사람은 대통령의 ‘고립’을 위협요소로 꼽는다. 대통령은 공간적으로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 갇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 바깥에서도 대통령이 있는 곳은 다르지 않다. 경호라인 안쪽은 청와대와 같은 고립공간이다. ‘생생한 국민’을 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은 ‘인의 장막’ 밖으로 나가기 어렵다. 수완 좋은 참모와 공무원이 만든 보고서와 통계수치에서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고립감을 덜어줄 지인이 필요해진다. 비선라인이 끼어들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정책과 인사가 현실과 멀어질 위험도 그만큼 높아진다.
박 의원은 “아무리 뛰어난 대통령도 청와대에 들어가 3개월이 지나면 현실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사심없이 시중여론을 전하는 사람과 대통령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보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경험을 소개했다.
대통령의 진짜 위기는 집권 3년 차부터 본격화된다. 대통령은 최고 수준의 정보를 거의 매일 접하고 축적한다. 그 사이 장관과 참모는 바뀐다. 대통령이 자신보다 국정을 꿰뚫어보는 참모는 없다는 자신감을 갖는 시기다. 일부는 사실이지만 ‘착각’이다. 한 일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는 것과 그 일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대통령은 참모들의 보고서와 통계수치에 의존해 현실을 가늠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현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임기 말로 갈수록 대통령은 현실에서 멀어지고 ‘독선’에 빠질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
마지막 임기 1년은 차기 대선바람으로 날이 샌다. 후반 임기는 2년 반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1년 반이라는 말도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문 대통령도 이런 문제를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광화문 집무실’을 공약했다. 이 공약은 사실상 무산됐다. 문 대통령도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이렇게 달라졌습니다’라는 보고서를 냈다. ‘우리 경제의 객관적 성과’ ‘혁신성장’ 편을 보면 한국경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온갖 통계수치는 정부의 눈부신 성과물로 포장됐다. 정부는 최근 재정으로 아르바이트 수준의 노인 일자리를 늘린 고용통계를 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이런 참모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이게 현실 맞습니까?”였다면 희망은 있다.
서울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