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을 맞아 꽃을 피울 알뿌리 식물들을 심는 시기는 늦가을이다. 정확하게 날짜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것은 지역마다 기온의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낙엽이 질 때부터 땅이 얼기 전까지라고 애매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알뿌리를 심는 깊이도 알 크기에 따라 3~4배로 잡으라고 권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겨울 날씨가 추운 곳은 좀 더 깊어야 하고, 온화한 곳은 알뿌리가 살짝 보일 정도로 묻어도 잘 커준다.
정원 격언은 양파를 캐 보면 그해 겨울이 보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양파의 껍질이 두툼하고 질기다면 그해 겨울이 추울 것이고, 반대로 양파 껍질이 얇고 투명하다면 그해 겨울은 온화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뿐만 아니다. 알뿌리는 심을 때 뿌리가 나오는 방향을 밑으로, 싹이 나올 방향을 위로 심어주는 게 원칙이다. 이렇게 안 심었다고 해서 알뿌리가 싹을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신 알뿌리가 땅속에서 돌면서 스스로 자리를 잡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원예의 답은 수학처럼 한결같고, 늘 같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자연을 대입시켜 끊임없이 식물과 소통을 해야 답이 찾아지기 때문이다.
작년, 속초 집 화단에는 검은 자주색의 튤립과 흰색을 섞어서 연출했는데 올해는 다시 보라와 흰색 튤립에 진한 보라의 공모양 꽃을 피우는 알리움을 추가하고 여기에 1년생인 안개꽃 씨를 같이 뿌려 주었다. 종일 고개를 숙이고 구멍을 내고, 씨를 뿌리다 보니 안 그래도 안 좋은 목의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내년 봄의 화려한 화단을 생각하면 육체적 힘듦은 견딜 만하다. 물론 이 화단은 봄이 지나면 막 키를 키운 라벤더(보라), 수레국화(흰색 보라 분홍)로 바뀌고, 늦여름이면 국화(진한 자주, 분홍)가 올라와 또 새로운 색을 보여준다. 같은 화단이지만 일년에 서너번 색을 갈아입는 셈이다.
가든디자이너로서 강의를 할 때 우리나라 분에게 가장 어렵게 설명하는 게 이런 ‘식물의 디자인’ 개념이다. 방금 언급한 속초의 작은 화단은 적어도 내년 봄 4월에서 5월 사이에는 흰색과 보라색의 조합으로 식물이 색을 만든다. 다시 말하면 나는 수종 하나하나를 선택해 심은 것이 아니라 식물이 피워내는 꽃의 색상을 생각하고 여기에 부합할 수 있는 식물을 선정한 셈이다. 마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화폭을 채울 색을 조합하여 색을 연출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물론 이는 나의 독창적 화단디자인 방법이 아니다. 이렇게 식물이 지니고 있는 꽃, 잎, 줄기 등을 이용해 색의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세 초에 이르러서의 일이고 그 핵심에 영국 가든디자이너 거투르드 지킬이라는 분이 있다.
그전까지는 서양의 경우에도 대부분 수목(나무)을 심어 정원의 형태를 잡는 일에 그쳤다. 이 때문에 이 시기를 두고, 정원 역사에서는 식물디자인의 개념이 탄생한 새로운 기점으로 본다. 화가 출신이었던 그녀는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 정원이라는 대지 위에 색의 정원을 연출했고, 이 기법은 당시 수 많은 예술가를 비롯한 정원 마니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중 한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끌로드 모네이기도 하다.
모네의 정원이라고 알려져 있는 ‘지베르니 정원’은 마치 그의 인상주의 그림을 보듯이 화단마다 특유의 색이 아름답게 연출돼 있다. 집 앞 화단은 하늘빛이 도는 붓꽃, 흰색 펜지, 보라색 알리움, 연초록과 보라의 라벤더를 섞어서 시원하면서도 차분한 화단을 연출한 반면, 건너편 화단은 샛빨간 달리아, 자주색의 칸나, 노란 헬리안투스, 주황색 한련화를 섞어 정열적인 색감을 화단을 만들어 놓았다.
작은 베란다지만 그곳에서 정원 생활을 즐기는 분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 기쁨이 면적과 상관없이 상당히 크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청자, 백자 화분에 심어진 동양란, 테라코타 화분에 심긴 다육, 스티로폼에 구멍을 내서 만든 상추, 나무 와인 상자에 심어진 튤립, 검은 플라스틱 화분 속의 영산홍…. 모두가 한결같이 낱낱의 아름다움과 기능이 있지만 이들이 한꺼번에 작은 베란다에 모여 있는 상황에서 디자인의 개념을 찾기는 어려워진다. 화분의 통일 혹은 심긴 식물이 어떤 특정 주제(색)로 표현됐을 때 여기에서 디자인이 시작됨을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작가·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