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코미디였다. 쓴웃음을 자아내는 ‘황당 코미디’ 말이다. 지난 19일 열린 자유한국당의 청년공약 발표회가 그랬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면서 행사를 평일 오후 2시에 열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들은 오지 말라는 이야기다. 금수저 백수청년들만 청년으로 생각하고 행사를 기획한 것 아닌가.” 행사에 초대된 한 청년은 한국당의 무딘 ‘청년 감수성’을 이같이 꼬집었다.
한국당의 민생 둔감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7일에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선거제·검찰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데 항의하는 ‘민생투쟁 대장정’을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시작했는데, 그날이 시장의 정기 휴무일이었다.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지도부는 텅 빈 시장 건물을 돌며 “아무도 없는데 날을 잘못 잡았다”는 씁쓸한 핀잔을 들어야 했다.
실수가 잦으면 무능을 의심하게 되나, 바쁜 정치 일정상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황 대표가 발표한 청년공약은 그렇게 도매금으로 넘길 수는 없다. 그는 청년기본법 통과, 채용·입시비리 연루자 공천 배제 등을 약속했다. 청년기본법은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2016년 5월 발의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고용·주거 등 다양한 청년정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법안은 발의 후 3년6개월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한국당이 법안 처리를 미룬 채 길거리 투쟁에 ‘올인’한 탓이 크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황 대표는 청년기본법 처리를 다짐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기대가 우려로 변했다. 지난 20일 그가 느닷없이 단식 투쟁에 들어가면서 20대 국회 중에 입법화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인다.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청년들의 원성을 샀던 박찬주 전 대장을 “참신한 인재”라며 영입하려다 거센 반발이 일자 발을 뺐던 그였다. 그로 인한 이미지 손상을 만회하려고 보수 대통합 깃발을 내걸었다가 계파 갈등에 막혀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렸다. 그러다 김세연 의원의 ‘전원 불출마’ 폭탄 주장에 직면하자 꺼내든 게 단식 투쟁 카드다. 이렇듯 ‘럭비공 리더십’을 이어가니 청년들이 어찌 불신하지 않겠는가.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다운 정책이 미비하기는 더불어민주당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구멍투성이 ‘위험의 외주화’ 방지대책에 대한 방관이 대표적인 증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청년정책은 ‘위험의 외주화’ 근절이다. 여러 단계의 하도급을 거쳐 위험한 작업을 외주화하다 보니, 업체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저임금의 사회초년생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김용균법)에는 ‘김용균’이 없다. 도급금지 범위를 도금·수은·납·카드뮴 관련 작업으로 한정하는 바람에 김 씨 같은 발전 비정규직은 보호대상이 안 된다는 얘기다.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모(19) 군 같은 철도 비정규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사각지대에서 하루 평균 3명의 비정규직이 목숨을 잃고 있다. 다수가 청년이다. 보다 못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위험 외주화’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물론 여당인 민주당도 합당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지방 청년에게도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최근 구상을 밝힌 ‘청년신도시 조성’ 공약의 대상지역을 경기도 3기 신도시로 설정한 데서 그 면모가 드러난다. 그럴 경우, 지방 청년의 수도권 유출에 가속도가 붙을 게 뻔하다. 사실 청년 문제는 지방의 최대 난제다. 전국 최악의 저출산·고령화 도시인 부산에서 보듯이, 청년 이탈을 막지 못하면 도시의 존속을 기약하기 어려워서다. 민주당은 이런 지방의 고충에 눈을 돌리지 않으니, 재정 등에 이어 청년정책마저 수도권과 지방을 차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정책은 국가의 미래 일꾼에 대한 설계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당과 민주당의 청년공약에선 그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꾸 멀어지는 청년들의 표심을 붙잡으려는 욕심이 앞서 겉멋에 치우쳐 급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가식성은 의원 세대교체를 둘러싼 두 당의 내부 논란에서도 볼 수 있다. 너도나도 청년 영입 필요성을 거론하지만, 정작 본심은 자리 보존 욕망으로 꽉 차 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고 서로 손가락질 하는데, 막상 그 손가락이 자기를 향하지는 않는다”는 김세연 의원의 지적은 한국당에서든, 민주당에서든 정곡을 찔렀다.
김용균법에 김용균이 없듯이, 두 당의 청년공약에는 청년이 없다. 하여, 국가의 미래 또한 흐릿하다. 그 그늘에서 청년들은 오늘도 비틀거린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