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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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틸레스키의 자화상. |
1971년 미국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이 발표한 글의 제목이다.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적 에세이로 평가받는 이 글은 여성이 예술로 성공하기 힘든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한 폭로와 동시에 역사에서 잊혔던 여성 미술가들을 재발견하는 역할을 했다. 남성이 지배하는 서양미술사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여성 화가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였다.
1593년 로마에서 태어난 젠틸레스키는 유명 화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화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성서나 신화 속 인물에 빗대 자기 발언을 한 당찬 여성이었다. 19세 때 그림 스승이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강간당한 후 그를 법정에 세웠을 뿐 아니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그려 그의 범죄 사실을 널리 알렸다. 적장을 유인해 단칼에 처단하는 유디트의 얼굴은 자기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적장의 얼굴은 타시로 대체해 영원한 복수를 했다.
이 자화상은 젠틸레스키가 40대 중반에 그린 것으로 ‘회화의 알레고리’라 불린다. 전통적 미술에서 남성은 늘 화가이자 주체이고 창조자 역할을 맡았던 반면 여성은 모델이자 객체로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젠틸레스키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을 창조자이자 창조물 그 자체로 묘사하고 있다.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선 그는 화면 밖 대상을 응시하며 왼손에는 팔레트, 오른손에는 붓을 쥐고 있다. 초록색 드레스 상의의 팔 부분은 끈으로 묶어 마치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 같다. 뒤로 질끈 묶은 머리와 정돈되지 않은 옆머리, 미화하지 않은 얼굴, 살을 드러낸 힘 있는 팔뚝은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 모습이 아니라 창작에 열중하는 프로 예술가 모습 그 자체다.
사실 그림 속 여성은 체사레 리파가 1593년 출간한 ‘이코놀로지아’에서 묘사한 회화의 우의적 모습을 참조한 것이다. 리파는 ‘회화는 검은 머리를 뒤로 묶고 마스크가 달린 금목걸이를 목에 두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손에 팔레트와 붓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입은 천으로 가린 덮개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림은 말이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젠틸레스키는 이 부분 만큼은 따르지 않았다. 아마 예술도 여성도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카라바조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평을 듣는 젠틸레스키는 최근 미투운동의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급부상 중이다. 그의 작품은 경매에 나올 때마다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13일 그의 초상화 한 점은 추정가의 6배인 62억 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다. 지난해 그의 그림을 구매한 런던 국립미술관은 내년 4월 젠틸레스키 개인전을 연다. 400년 전 화가에 대한 전방위적 재평가 작업이 이제야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행동과 그림으로 남성 폭력에 맞서 싸웠던 그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위대한 예술가였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