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하얀 국물의 라면이 마치 라면시장의 판도를 바꾸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채 1년을 못 갔다. 소비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빨간 라면을 찾았다. 짬뽕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원조’를 앞세우며 나가사키 스타일의 하얀 짬뽕이 공세를 취했다. 소비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얀 짬뽕의 공세에는 나름 명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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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국물이 식욕을 자극하는 짬뽕. |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짬뽕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토인비의 말을 방증한다. 19세기 후반 제물포(인천)와 나가사키에는 무역과 일자리 등을 이유로 많은 화교가 유입됐다. 제물포에는 주로 산둥성 출신이, 나가사키에는 푸젠성 출신의 화교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차이는 제물포와 나가사키에서 본토 음식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현지화된 음식을 탄생시켰으니, 그것이 바로 짜장면과 ‘잔폰’이다. 그리고 양국에 거주하던 화교들의 교류와 함께 짜장면은 나가사키로 건너가 자장멘이 되고, 잔폰은 제물포로 건너와 짬뽕이 되었다. 그러니 나가사키 짬뽕의 공세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진행되었던 ‘짜장면과 잔폰’의 교류가 되풀이되는 셈이다.
잔폰의 원형은 돼지고기·표고버섯·죽순·파 등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중국 푸젠성의 음식인 ‘탕러우쓰몐’과 고기와 채소를 볶아 닭이나 돼지뼈로 만든 육수를 붓고 면을 말아 먹는 ‘차오마몐(초마면)’ 등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나가사키의 명물 음식으로 관광객에게서 인기를 얻고 있는 잔폰을 먹어보면 탕러우쓰몐과 차오마몐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잔폰 역시 초기에는 하얀 국물이었고 이를 짬뽕 또는 초마면이라 불렀다. 그런데 화교의 전유물이었던 중식업계에 한국인이 본격 진출하기 시작한 1970년 초반에는 고춧가루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얀색의 국물은 빨간색으로, 담백한 맛은 칼칼한 맛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도 1970년대 이전부터 장사를 하던 중국집에 가면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초마면’을 더러 만날 수 있다.
무릇 외래 음식은 교류를 통해 유입되어 현지화를 거치며 정착하기 마련이다. 라면이나 짬뽕이나 중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유입될 당시만 하더라도 하얀 국물이었지만 한국인의 기호에 의해 빨간 국물로 탈바꿈했다. 그 세월이 어느덧 반세기에 이르렀다. 당장에라도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 같던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이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사그라졌듯이, 이미 굳어진 전통은 잠깐의 유행으로 바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한국인에게 짬뽕은 역시 빨간 국물이 정답이다. 음식의 서사를 이해하지 못한 트렌드는 그래서 언제나 ‘반짝 흥행’ 이상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