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식인종이 나를 잡으면, 나는 그들이 다음과 같이 말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슈바이처 박사를 먹었어. 그는 끝까지 맛이 좋았어. 그리고 그의 끝도 나쁘지는 않았어’. ‘적도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의 묘비명이다. 그는 이 묘비명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 삶은 그의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의 아프리카 침탈에 대한 속죄와 성찰의 기록이다. 그는 “우리가 식민지 주민에게 베푼 호의는 선행이라기보다는 우리 백인의 배가 그들의 해안에 상륙하던 그날부터 그들에게 가한 수많은 고통에 대한 속죄 행위”라고 썼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며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은 이 기준에 온전히 부합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자서전의 고전으로 회자되며 끊임없이 감동을 재생산하고 있다. 오웰의 자서전 기준에 견주어 보면, 전기 작가 더그 웨드가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트럼프의 백악관 속에서’는 슈바이처의 자서전과 대조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자화자찬과 거짓말투성이어서다.
트럼프는 자서전에서 “그들(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벗겨 먹는다”고 했다.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들어보지 않았나. 우리는 너무 많이 준다. 그런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도 했다. 얼토당토않은 트집이다. 한국은 주한미군 방위비의 50% 이상을 분담하는 데다, 매년 7000억여 원어치의 미국산 무기를 구입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쓰지 못한 분담금만 현재 1조 원이 넘는다.
트럼프는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수상을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던 처칠 동상을 트럼프가 취임 이후 원위치시켰을 정도라고 한다. 처칠은 2차 대전 당시 루스벨트와 철통 같은 영미 연합군 전략을 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끈 동맹주의자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영미 동맹과 세계 질서를 흔들고 있다. 이를 우려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지난 6월 트럼프에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처칠의 자서전 ‘제2차 세계대전’의 초판본을 선물하기도 했다. 동맹의 중요성을 환기하려는 뜻에서다. 하지만 트럼프는 오불관언이다. 세계 지도자의 자서전 품격과 평화는 비례하는 모양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