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도 대충 끝나고 조금 한가한 날, 햇빛이 좋은 날을 방문종이 가는 날로 잡습니다. 도시는 당연하고, 요즘 시골집 중 방문의 창호지를 매년 갈아야 하는 집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집은 옛날 그대로의 시골집이라 한지로 방문을 바르는데 자연 그대로의 햇빛과 바람과 비와 함께 세월을 보내면서 더러 얼룩도 지고, 햇빛과 바람에 삭고, 벌레의 공격에 뚫리고, 더러 사람의 호기심에도 뚫리고, 실수로도 구멍이 나고, 어쩌다 찢어지는 수난들을 겪으면, 그때마다 땜빵으로 버텨보지만, 1년에 한 번 게으름을 피우며 땜빵을 거듭해도, 2년에 한 번 정도는 한지를 갈아줘야 합니다.
시골살이의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그 일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날 잡기에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작은 일 같지만 혼자서는 쉽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누가 종잇장도 맞닿아야 소리가 난다고 했는지? 참 맞는 말인 것이 한 해는 혼자 문을 바르겠다고 시작했는데, 준비도 혼자 잘 하고 모든 것은 다 되는데, 어쩌자고 문종이는 내 마음과 달리 제멋대로 아무 데나 붙기를 거듭해서 애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풀 먹은 한지는 다루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아서 안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데 한옥 문의 칸을 맞추고 정조준해서 붙여 보지만 척 하고 붙어버린 종이는 그러나 삐뚤빼뚤, 아주 멋대로입니다. 다시 붙이려고 떼내면 물기 잔뜩 묻은 한지는 찢어지기 일쑤입니다. 그 이후에는 혼자는 아예 시도를 하지 않고 함께 할 사람을 구하거나 아니면 땜빵으로 버티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봅니다.
그러다가 요령이 생겨서 한지 대신 광목천으로 대체를 했습니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하고 방문을 꼭 한지로 발라야만 한다고 생각했는지 딱할 노릇입니다. 광목천으로 문을 바르니 좋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문 바르기가 엄청 수월합니다. 그냥 풀을 쑤어서 문에 맞게 재단된 광목천을 풀에 넣고 주물주물 주물러서 좍 펼쳐서 붙이면 됩니다. 그리고 오래 갑니다. 최소한 5년은 갈 것 같습니다.
비바람에도, 햇빛에도, 벌레의 공격도, 사람의 호기심에도 한동안은 버틸 것입니다. 보기에 거슬리지 않고 깨끗하고 품위까지 있습니다. 한지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당장 화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많은 도움이 되겠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지 않고 몇 년을 지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엄청난 덕입니다.
종이는 바르는 것이고 천은 붙이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그 일도 혼자는 어렵기는 합니다. 좍 펼칠 때 누군가의 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는 햇볕에 말립니다. 햇빛을 받은 새 옷을 갈아입은 문은 아주 싱그럽다고 해야 하나? 수줍은 듯도 하고 기운이 넘치는 듯도 하고 여성성과 남성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따사로운 햇살의 집중 애무를 받으면 문에 말린 광목천은 팽팽하게 긴장합니다.
한지는 더합니다. 풀 먹은 한지가 햇볕과 만나며 내는 소리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음악입니다. 한지가 마르면서 팽팽하게 긴장하며 작은 소리로 자기만의 소리를 만들어서 누가 들을세라 햇볕에게만 속삭이듯. 그러나 나는 듣고 맙니다.
그 소리를 더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입 안 가득 물을 머금었다가 ‘푸우’하고 뿌려봅니다. 옛날에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러면 긴장한 한지는 좀 더 긴장을 하며 더 팽팽해지며 아까보다 조금 큰, 그러나 여전히 작은 소리로 자기들만의 연주를 합니다. 아주 좋은 느낌입니다.
그들의 연주가 끝나면 문고리 주변을 장식하는데 옛날 식구가 많을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장식하기 위해 작은 다툼이 있기도 했는데 이제 나는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고 내가 선택한 장식품, 즉 단풍잎이든 대나무잎이든 국화든 뭐든 그것으로 장식하며, 저 먼 지난날 여러 명이 놀이하듯 축제하듯 했던 그날들을 생각하며 쓸쓸해하기도 합니다.
그 덧바름은 장식이라기보다 문고리 주변에 손을 많이 타니까 한 번 덧바르며 보기에도 좋으라고 꽃이나 고운 나뭇잎으로 장식한 우리 옛사람들의 작은 호사라 생각됩니다. 구멍이 숭숭 뚫리고 얼룩지고 낡았던 방문이 하얀 새 옷을 갈아입고 그날부터 내 방을 지킬 것을 생각하면 기분은 저절로 산뜻해집니다.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