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 정당에 인적 쇄신 경쟁이 뜨겁다. 누가 더 많은 현역 의원을 교체하고, 더 참신한 방법으로 공천하느냐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만 해도 파격적 안을 내놨다. 즉 비례대표 후보를 국민심사단이 뽑도록 하고, 현역은 평가를 통해 하위 20%에 감점을 준다는 거다. 이에 질세라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강력한 카드를 꺼냈다. 지역구 의원 3분의 1 이상 ‘컷오프’를 포함해 현역을 절반 넘게 바꾼다는 방침이다.
알다시피 우리 정치권에서 물갈이나 세대교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역대 총선 때마다 숱하게 봐 왔다.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한 구호이자 메뉴였다. 그런 과정에서 여야 간 공방과 내부 논란도 다반사로 벌어졌다.
김영삼(YS) 대통령 시절인 1995년의 일이다. 그 이듬해 15대 총선을 앞두고 YS의 정치권 세대교체 발언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당시 야권의 김대중(DJ) 아·태재단 이사장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세대교체론은 박정희 군부가 민주인사를 매장시키기 위해 만든 논리이고, YS도 인위적 세대교체에 반대해 놓고 이제 와서 식언을 한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랬던 DJ도 자신의 집권기인 1999년 ‘젊은 피 수혈론’을 내세워 정치권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와 관련해 여권에서는 당장 다음해 총선의 물갈이 리스트까지 나돌았으니 알 만하다.
이렇듯 물갈이는 여야 지도층이 권력과 입지 강화에 활용한 면이 짙었다. YS의 신한국당은 15대 총선 때 재야인사 영입으로 원내 1당을 지켰고, DJ의 새천년민주당은 16대 때 ‘386운동권’을 대거 발탁함으로써 제1 야당에 올랐다. 두 총선 결과, 후보 물갈이에 따른 전체 초선(初選) 비율이 각각 46, 41%였다는 점에서 실감이 난다. 그 이후로도 총선 때마다 물갈이가 이뤄졌고, 초선 당선은 매번 40%를 웃돌았다. 심지어 2004년 17대 국회에서는 10명 중 6명이 초선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총선 물갈이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토록 국회의원이 교체됐음에도 한국 정치는 나아지기는커녕 후진적 수준을 면치 못하는 꼴이다. 2012년 19대 국회는 절반 가까운 물갈이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악이란 평을 들었다. 더욱이 선거법 위반이나 각종 비리 연루로 22명이 의원직을 잃었고, 거듭된 국회 공전과 파행 속에 법안 처리율이 36.8%에 그쳤다. 현재 20대 국회는 그보다도 훨씬 뒤떨어지고, ‘동물·식물 국회’에다 협치 실종으로 더 최악이란 오명이 붙었다.
결국 요체는 정치의 구조·제도적 개혁이다. 단순히 사람만 ‘몇 퍼센트’ 바꾼다고 해서 별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인적 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정당과 국회 운영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정치가 올바로 작동할 수 있을 터다. 처음에는 소신 발언을 하고 괜찮은 평가를 받던 인물도 국회에 가서는 당론이나 진영논리에 묻히는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인위적 쇄신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또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으려고 중앙당에 무조건 복종하거나 특권을 누리며 기득권 정치와 결탁하는 행태가 지속되는 한, 물갈이는 체질 변화 없는 상투적인 화장술로 비친다.
그런 맥락에서 내년 총선의 핵심 이슈이자 평가 잣대는 정치·정당개혁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우리의 정치질서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여야가 진정 이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면 좋겠다. 이른바 셀프(급여인상·해외출장·징계심사) 금지 3법이 발의됐지만, 그것만으로는 턱도 없다. 우선 국회의원 특권을 획기적으로 없애야 그마나 국민신뢰를 조금이라도 더 받지 싶다. 의원실 한 곳에 들이는 예산만도 연간 7억3200만여 원에 이른다. 세비 좀 깎는다고 될 게 아니다. 선거제 개편만 해도 이럴 바에는 다음부터 아예 외부기관에 맡기는 게 낫다. 정치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밥그릇 싸움만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자치단체장의 세 번 연임 금지처럼 국회의원도 선수(選數)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걸 전향적으로 추진해 볼 만하다. 여론의 찬성도가 높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따른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이 되지 않겠나.
어느 학자의 지적과 같이 요즈음 우리 정치판은 조선 시대 극성을 부렸던 붕당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정쟁과 진영논리로 갈라져서 사생결단식 대결이 판을 친다. 정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이 전개되어도 시원찮을텐데 거의 막힌 형국이다. 하기야 한국사회에 정치 혐오와 국회 불신이 만연한 지도 오래됐다. 곧 2020년이 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정치권이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아무래도 뼈를 깎는 자기 개혁의 길밖에 없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