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영도다. 태종대는 가봤어도 영도는 못 가봤다는 말은 오래된 농담이 됐다. 영도 곳곳이 그야말로 ‘핫’하다. 절영해안산책로와 흰여울문화마을, 깡깡이예술마을, 봉래동 창고길, 해돋이마을, 청학배수지전망대 등등 태종대나 봉래산 못지않게 가볼 만한 곳이 많아졌다. 흰여울 해안터널, 깡깡이유람선처럼 콘텐츠도 많아졌다. 여기저기 들어선 개성 넘치는 카페는 또 다른 영도 ‘갬성’을 만들고 있다.
최근 회의에서 만난 한 교수님은 대학생이 부산을 배경으로 만든 영상물 심사를 갔더니 절반 이상이 영도를 다뤄 놀랐다고 했다. 나도 깡깡이예술마을 조성사업을 시작으로 5년 차 영도를 오가고 있는데, 변화를 꽤 체감한다. 우선 주변 사람이 영도에 오는 일이 많아졌다. 식사나 술자리에서도 심심찮게 영도를 대화거리로 삼는다. 혹시 빈 건물이나 땅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부탁도 몇 번 받았다. 무엇보다 영도에 대해 궁금해하며, 어딜 가면 좋은지 물어보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그동안 나에게 영도는 먼 곳이었다. 어쩌다 남포동에 가게 되어도, 멀리 섬을 바라볼 뿐 굳이 다리를 건널 일은 없었다. 물리적 거리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가 더 컸던 것 같다. 어릴 때 영도는 왠지 모르게 거칠고 센 무서운 동네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가끔 대중매체에서 단편적으로 접하는 이미지 탓인지, 좀처럼 그 느낌이 변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영도를 방문한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다. 먼저, 운전면허를 따고 도로연수를 영도에서 했던 일이다. 가파른 오르막이 많고, 도로가 좁은 영도가 운전연습에 최적지라는 이유였다. 당시는 수동기어라 오르막에서 뒤로 밀리거나 시동을 꺼트리는 등 덜덜 떨면서 운전했다. 두 번째는 2011년 더운 여름날, 한진중공업 조선 부문 정리해고에 따른 희망버스 운동에 참여한 일이다. 몇 차 희망버스였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무수히 많은 이와 함께 영도다리를 건너 한진중공업 앞에 이르렀다. 육중한 철문과 높은 크레인의 푸른 금속 빛이 더운 여름이었음에도 차갑게 느껴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랬던 영도를 새롭게 만나고, 배우고 있다. 영도는 사면이 해안인 섬이지만, 육지와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도시와 호흡하면서 성장해온 곳이다. 거친 파도와 태풍은 물론,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부산을 지켜온 방파제이자 배후기지이다. 그래서 영도에는 항구도시 부산의 원형과 역사적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았다. 그로부터 비롯된 독특한 생활문화자산도 풍부하다. 산복도로가 산을 오른 사람들 이야기라면, 영도는 바다로 나간 사람들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제주 해녀의 첫 기착지이자, 피란 시절 팔도 각지 사람이 찾아와 삶을 일궈낸 곳. 산업화 시기 조선소, 부두로 사람들이 몰려온 곳. 그래서 이북 사람이 모여 살았다는 이북동네와 제주은행 등이 있는 영도는,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린 부산에서 최후의 역사적 보루 같은 곳이다. 이런 독특한 정체성과 고유한 삶의 자원이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 같다.
요즘 여러 사람과 함께 협력해 영도를 문화적 상상력으로 가꾸는 일이 한창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법정 문화도시 최종 지정을 위한 여러 사업이 펼쳐지는 것인데, 영도구는 ‘예술과 도시의 섬, 영도’를 비전으로 10개 도시 중 유일하게 구 단위 지자체로 후보에 속해 있다. 문화적 상상력은 지역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장소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래서 영도 문화도시는 삶의 터전으로서 영도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장식적인 볼거리 혹은 화려한 이벤트를 제공하거나, 관광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영도가 가진 매력을 발굴하고, 시민과 널리 공유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 첫걸음으로 지역 잡지 ‘다리 너머 영도’를 냈다. 한 주민은, 다리를 넘는 일은 늘 영도를 벗어나 남포동이나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일이었는데 이렇게 영도가 호명되는 일은 처음이라며, 잡지가 참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나도 그리고 많은 사람도 다리 너머 영도를 궁금해한다. 바야흐로 영도 전성시대다.
플랜비문화예술 협동조합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