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8일간의 단식을 끝내고 어제 당무에 복귀했다. 단식 중단은 요구사항이 관철돼서가 아니라 급속한 건강 악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를 두고 고작 8일이냐는 비아냥과 겨울 한파 속에 그나마 오래 버텼다는 등의 뒷말이 나왔다. 그러나 단식 중단 연유와 기간이 뭐 대수겠나. 호사가들이야 다른 정치인의 단식과 비교하며 이런저런 말들을 하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목숨을 건 결단이니 함부로 입을 댈 일은 아니다. 어찌 됐든 제1 야당 대표의 단식은 끝났고, 이제 그의 결행이 남긴 결과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사실 황 대표의 단식 발표는 그야말로 뜬금없었다. 지소미아 파기 철회, 연동형 비례대표제 저지, 공수처법 철회 등 3가지 요구사항이 절박하긴 했을 터이다. 하지만 주변 인사들조차 예상 못 한 그의 결행에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대놓고 조롱하는 듯한 여당의 반응이야 당연하다고 치자. 한국당 내부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코웃음 칠 것”이라고 했다. 단식이 자해행위이며 애가 떼 쓸 때나 하는 것이란 비판도 나왔다. 시기도 좋지 않았다. 김세연 한국당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며 당의 쇄신을 요구한 직후였다. 당내 분란에 지도력이 흔들리자 이를 돌파하려는 승부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은 이유다.
‘정치 초보’의 무리수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 초보’답게 고지식한 모습을 보였다. 몰아치는 한파에도 텐트 안에 전열기 등 난방시설도 들이지 못하게 하는 등 단호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런 강한 뜻 때문인지, 정치적 예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가 머무는 텐트에는 여야 정치인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각당 대표는 물론, 황 대표를 비난했던 홍 전 대표도 그를 찾았다. 그를 조롱했던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 또한 시간이 흐르자 단식 투쟁 선택이 옳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8일이 길든 짧든, 시간은 황 대표 편이었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제1 야당 대표의 단식에 여당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당내 분란을 일거에 잠재웠다는 점이다.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비롯한 당 안팎의 인적 쇄신 요구는 쑥 들어가버렸다. 친박 비박 간 다툼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우리 모두가 황교안’이라며 결사항전하자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황 대표로서는 별로 나쁘지 않은 손익계산서다.
목숨을 건 단식을 놓고 손익계산서 운운하는 게 야박하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제1 야당 대표가 생명을 담보로 한 투쟁에서 득실을 따지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그게 무리수인지, 승부수인지는 결과가 말해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선택이 일단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그게 내부 단속용일 뿐이라는 게 한계다. 그가 내걸었던 3가지 요구사항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인 지소미아 파기 철회가 받아들여졌으나, 이는 그의 단식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법 관련 요구는 전혀 진척이 없고 더 꼬여만 가고 있다.
비록 내부 단속용이긴 해도 나름의 성과를 거둔 만큼 이제 황 대표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무엇보다 흔들리는 당내 지도력을 굳건히 했으니 한층 자신감을 가졌을 법하다. 문제는 이런 자신감이 어디로 향하느냐 여부다. 무리수라는 비판에도 삭발과 단식 등 잇단 강경 투쟁이 먹혀들었다고 판단했다면, 그가 갈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더 강한 대정부 투쟁이다.
그 조짐은 벌써 나타났다. 한국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199개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전격 신청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법안 저지를 위해 예상 밖의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이 때문에 정국은 시계 제로 상태로 빠져버렸다.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는 물론 아예 정기국회 자체를 마비시킨다는 들끓는 비난에도 오불관언이다. 오직 패스트트랙 저지만을 위해 강경 투쟁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당무에 복귀한 황 대표로서는 일사불란한 이런 당의 투쟁이 만족스러울 듯하다. 단식이 사분오열된 당의 단합을 이끄는 지렛대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효과일 뿐이다. 자칫 자신의 선택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그의 단식이 남긴 게 이것이라면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다. 잠시 대표의 지도력이 강화됐다고는 하나, 당내 갈등은 수면 아래 잠자고 있을 뿐이다. 인적 쇄신과 보수통합 등 과제도 산적해 있다. 엉뚱한 자신감은 오판을 부르고 이는 역풍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단식 이후 황 대표는 그 길로 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황교안’이라는 당 일부 목소리에 황 대표가 현혹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