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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법률] 서시: 법이 차마 부끄러워 /오정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04 19:02:04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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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른다. 펼쳐진 창공에 구름이 흐르고 어딘가로 햇살이 반짝인다. 멀리 저 너머로 이어지는 세계에서 이런저런 다양하고 예쁜 관계와 재미난 이야기로 사람들이 살 텐데, 이 무한히 넓은 하늘 아래 어리석음과 고통 역시 가득하다. 많은 것을 이겨내고 다르게 만들어 왔건만 아직 할 일은 잔뜩이다. 애써서 진전시켜 온 민주주의도 순식간에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힘들게 가꾸고 보강해 온 원칙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몰상식적이고 무도한 작태도 목도한다.
그림 서상균
세상이 과연 더 정의롭고 평화로워졌는지 심히 의문스러운데, 법이 어떤 길을 밟아왔으며 지금 어디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지 질문해 보면, 법은 차마 부끄럽다. 사회의 기본 장치인지라 늘 존재해 왔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괜찮은 대접은 받고 있는 법이 주어진 일을 실상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순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잎새 앞에서도 법이 차마 부끄럽다. 종종 있어 보이게 행세하고 일견 보기 좋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의 삶을 더 깊게 이해하고 보듬기보다, 기껏 자신의 조직적인 힘을 확인하고 과시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이는 법은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럽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요란스럽게 한껏 위세를 떠는 모습도 면구스럽다. 큰 소리로 다스리고 통제하고 겁을 주는 것 외에 다른 양식을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니건만 여전히 쉽사리 구태에 의존한 모습은 적지 않게 실망스럽다.

바람이 부니 법이 더욱 부끄럽다. 변화가 요청되고 자연히 달라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거늘, 법은 꽤 완강히 기존 틀을 고집한다. 아무리 시민들이 비판하고 개혁을 호소해도 흔들림 없이 하던 대로 할 태세이다. 세상의 목소리는 어떻든, 법 자체에 유리한 쪽으로 영악하게 계산을 해서 입장정리를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정의에 맞서 굳건하게 버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법의 역사와 사뭇 대조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법이 부끄러워 아직 별은 있건만 차마 노래를 못 하겠다. 인간의 편리한 살림살이에 밤하늘의 별빛이 희미해졌어도 별이 없는 게 아니듯이, 법이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을진대 그렇다고 장담은 못 하겠다. 오랜 세월 법이 특정한 방식으로 구축해 온 권력과 세력이 너무도 튼실한 것이 아연할 지경이다. 과연 우리가 법을 얘기하는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우리 눈빛에 맺히고 우리 마음속에 팬 이 노래가 사람들 사이에서 거리에서 제도에서 세상에서 불릴까. 이 노래가 끊이지 않고 계속될 수 있을까. 우리의 이 노래가 법에 들리고 법을 움직일 수 있을까.

더욱이 죽어가는 것 앞에 사랑을 말하기엔 법이 차마 부끄럽다. 세월을 보내서 쇠약해지고 병드는 것 자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일하는 환경의 제도가 허술하여 뻔히 알면서도 창졸간에 사고로 다치는 경우가 여전히 빈번하니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다. 야만적인 모욕과 폭력에 시달린 이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부당하게 희생된 이들에 관한 여러 사건의 진상은 은폐되거나 조사가 지지부진하다. 보잘것없는 생에 구슬픈 사랑이 잔잔히 물결치는데 법은 응답조차 하지 않는다.

법이 차마 부끄러워 오늘 밤에도 괴로워한다. 희망을 말하고 버티자고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 실은 자신이 없고 착잡해진다. 함께 노력하는 벗들이 있어도 이 부끄러움과 좌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괴로워하며 다시 헤쳐 나간다. 종종 꿈에서도 궁싯거린다.

그렇게 미약한 이들이 저마다 곳곳에서 최선을 다해 기꺼이 아픔을 겪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이 할 바를 다한다. 법에 이 정성이 전달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살아간다. 그나마 이것이 우리가 늘 할 수 있는 일이다. 별이 바람에 스치울 때 무수한 눈물이 빛나리라.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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