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차별과 혐오로 일그러진 우리의 초상 /정혜경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05 18:36:51
  •  |   본지 2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나온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말은 새해가 이어온다는 뜻을 숨기고 있다. 세상만사는 언제나 두 개의 얼굴을 지닌다. 그러니 그가 누구든, 무엇이 되었든,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편견으로 차별하고 이기심만으로 혐오한다.

성경 속 노아 이야기에도 차별이 숨어 있다. 유일한 선인으로 선택받은 노아는 방주에 올라 홀로 구원받았다. 그는 동물을 학대하고 함부로 살상하던 육식주의자에 비하면 채식주의자나 생태주의자에 가깝고 동물을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포도밭 경작의 창시자로도 전해진다. 그러나 노아가 구원받은 이후 만취해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는 것이나, 지혜의 아이콘으로 각인된 솔로몬이 깊은 허무의 늪에 빠진 것에 대해서는 덜 알려져 있다. 신화가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듯이, 성경 속 노아 이야기도 그렇다. 벌거벗은 아비의 몸을 보지 않고 가려준 두 아들은 복을 누렸지만, 조롱하듯 떠벌리기만 한 큰아들은 자자손손 큰 벌을 받았는데 그가 아시아인의 선조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족을 타자로 만드는, 극명한 차별의식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역사 속 수많은 분쟁의 이면에는 이렇듯 편견과 차별의식에서 기인한 혐오가 유혈이 낭자한 비극을 양산하고 있다.

국민장을 했다는 마한의 여성 부족장 무덤이 발굴되었을 때, ‘파리구더기와 함께 발견된 여성’으로 표기한 것을 보았다. ‘파리구더기’만 강조하여 꼭 그리 적어야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이견도 그런 차이로 시작된다.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여성이라는 차별적 존재에 대한 분노를 목격할 때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성폭행 당한 딸 때문에 술을 마시며 울던 아버지가 몸과 마음을 다친 딸에게 심한 매질을 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훼손된 물건이니 내 집에 둘 수는 없다는 것이 그가 가진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혐오의 명분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내 눈에는 참으로 불가해한 세상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카프카의 ‘심판’을 읽었을 때에도 이웃집의 그 처참했던 비극이 아프게 떠올랐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토대가 되고 잣대가 될 수 있는 인성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성 교육이 제대로 됐더라면 한 해에 1000명에 육박하는 노동자가 귀가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나, 비수 같은 악성 댓글로 인한 자살을 잇따라 봐야 하는 참담한 현실도 조금은 달라졌을 테니까 말이다.

삶에 대한 성찰과 체득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면, 최소한 민생 법안을 가지고 정치적 손익만을 따지는 정치인을 양산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매연을 뿜어내는 고급승용차만 타는 이들이 입으로는 대기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분개하지만 정작 본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동하지 않아 벌어지는 참극은 너무나 많다.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그런 이기심은 차별과 혐오를 잉태하고 반복과 질시만을 양산한다.

이른바 ‘미투’ 법안 34건 중 6건만이 통과되었다는 사실, 통과율 17%라는 수치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무고한 시민을 억울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 배제의 이유였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 속에 참혹한 피해를 입은 여성은 두지 않겠다는 차별적 시선에서 기인된 혐오가 모든 화해와 소통을 막는다. 지난 10년 동안 여성 인권 단체는 여성연예인 인권보호 법제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으로 희생되어야 길이 보일까. 과연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희망은 있는가. 2019년의 우리는 참담함과 공허함 속에서 또 한 해를 떠나보내고 있다.

절망을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만 우리는 용기가 없어도 그저 눈앞에 닥친 현실 앞에서 절망이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영화 ‘히틀러’에 나오는 대사에서도 그랬듯 악이 지배하는 세상의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자들의 나약함과 수수방관이다. 우리는 선한 자들이라 자처하며 모든 참극을 수수방관한다. 성폭행을 당한 유치원생의 모습을 보면서도 범죄자가 내 자식이기만 하면 후안무치가 되어도 좋다는 이기심과 몰지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니체는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삶의 방식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출구 없는 현실에서 삶의 이유를 어디에서 무슨 수로 찾아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적우침주(積羽沈舟), 작은 깃털이 어떻게 배를 가라앉힐 수가 있을까마는 그럴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으로 나만을 위해 산다는 것의 의미 없음을 자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만 한다.

동의대 교수·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회 마을버스뿐
  3. 3[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4. 4[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5. 5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10. 10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1. 1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4. 4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5. 5“통합 진에어, 처음 취지대로 부산 이전해야”
  6. 6박철우 서울공소청장 “李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검토한 적 없다”
  7. 7“‘재정빨대’ 사과 바라시니 사과” 秋 순직 소방관 빈소 발언 파장(종합)
  8. 8[속보] 강화도 해안서 '北 유실 추정' 대인지뢰 또 발견…이달에만 4번째
  9. 9퐁피두 중단에 국힘 박수영 1인 시위…시민사회 “토건 논리 부활 시도” 반발
  10. 10이 대통령 지지율 3주만에 반등한 37.3%…민주 36.2%·국힘 40.9%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3. 3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4. 4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5. 5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6. 6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7. 7기술유출 엄단…산업부 ‘특사경’ 도입 추진
  8. 8양현재단 20년, 해운·항만 새 항로 모색
  9. 9해양진흥공사, 상임이사 공개 모집
  10. 10노르웨이 북극권 누빈 부산 청소년, 극지경험 공유의 場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회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6. 6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7. 7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8. 8“경남 강점 활용한 SMR 특구 만들자”
  9. 9재개발 조합장 수사 정보 채팅방 올린 공무원 벌금
  10. 10주 15시간 넘기면 인건비 30%↑…생존 위해 쪼개기 고용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발가벗겨진 사우디
“난 짜장”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LCC 통합 때 약속한 부산 허브 구축, 정부가 이행하라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무색, 제도적 미비점 보완 시급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