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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 지역사회도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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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2-05 19:25:0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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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의 인간사에서 수발이 필요한 노인은 늘 존재했고, 누군가는 노인을 돌봤다. 우리나라가 본격적 산업화·도시화의 길로 접어들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인 돌봄은 당대의 사회적 문제가 아니었다. 국민 대부분은 농·어업 등 자영업에 종사했고, 대가족을 이루며 지역사회에서 삶을 영위했다.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은 협업적 생산 활동을 영위했고, 여성은 자녀를 양육하고 노인을 수발했다. 당시 여성 대부분은 생산 활동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와 돌봄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았다. 이런 관계는 가부장적 농경사회라는 긴 역사적 시기 동안 계속됐다.

   
그림 서상균
농경사회에서는 돌봄을 둘러싼 선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대가족 체제의 중심인 장년 세대는 자기를 키워주고 생산수단인 논과 밭을 물려준 후 거동이 불편해진 부모를 기꺼이 수발했다. 이 과정에서 형제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 장년 세대는 자녀를 양육하는 데도 열중했다. 생산수단의 제약이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녀 수는 많을수록 생산 활동에 유리했고, 이들 자녀는 노후 부양과 돌봄을 담보해줄 든든한 보장책이 됐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농경사회 대가족 체제에서 다수의 자녀가 태어나고, 장년 세대는 이들에게 돌봄 노동을 제공하며, 이후 자녀들이 장년이 됐을 때 이들로부터 부양과 돌봄 노동을 제공받게 된다.
돌봄 노동의 세대 간 선순환은 긴 역사적 시기 동안 꾸준히 작동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장년 세대의 여성이 감당했던 희생과 헌신이다. 여성은 일상의 가사 노동뿐만 아니라 자녀를 돌보고 거동이 불편한 시부모 등을 수발했다. 당대의 여성은 농경사회의 생산 활동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육아·돌봄·수발 노동을 제공하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둘째, 다산다사(多産多死)의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로 노인 돌봄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많이 태어났기 때문에 생산과 돌봄·수발 노동을 제공할 장년 세대의 수는 많았고, 짧은 수명 때문에 노인 수발의 기간은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지역사회의 자연적 연대가 작동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가족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에 대한 수발은 지역사회의 혈연·지연 공동체가 상부상조 연대를 통해 해결했다.

산업화·도시화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가족과 지역사회에 구조적 변화가 생겼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가족은 해체 위기를 맞았고, 지역사회는 공동체성을 상실했다. 자연적 연대가 해체된 것이다. 농경사회와 달리 산업·탈산업사회의 노동은 매우 경쟁적이다. 남성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성 평등 시대의 여성 노동력도 노동시장의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가족의 돌봄 기능은 위축되거나 해체되고 있다. 자녀 양육은 청·장년 세대 노동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걸림돌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화됐다. 또 노인 돌봄·수발을 기꺼이 담당하려는 여성은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저출산은 돌봄 노동의 선순환 구조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여기에 더해 고령화는 급속히 진행됐고, 수발이 필요한 후기 노인 비중은 갈수록 커졌다. 대가족 체제에서 돌봄의 자연적 선순환을 가능케 했던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는 완전히 무너졌다.

한국은 2000년 노인인구 비율이 7.3%로 고령화사회(노인인구 비율 7% 이상)에 진입했다. 가족 중심의 돌봄 선순환을 대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추진기획단을 설치했고 2005년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2007년 4월 정부 입법으로 국회를 통과했고,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7월 시행됐다. 2008년 당시 한국 노인인구 비중은 10.3%였다. 고령사회 도래가 임박한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노인 돌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해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정착이 필요했다.

2017년 우리나라 장기요양 대상자는 전체 노인의 8%인데, OECD 평균은 10%를 넘고, 독일 13.4%, 일본은 18.6%이다. 2020년 약 87만 명으로 예상되고, 2022년 대상자를 9.6%까지 늘리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 계획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원은 장기요양보험료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부담금, 수급자의 본인부담금으로 조달된다.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에 장기요양보험료율을 곱해 산정한다. 2019년 현재 장기요양보험료율은 8.51%이고, 2020년 10.25%로 인상되는데 세대당 1만1000원 정도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본인부담률은 재가급여의 경우 급여비용의 15%, 시설급여의 경우 20%다.

이제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을 위해 진솔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계약을 도출해야 한다. 첫째,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이고 지역사회의 참여를 장려해야 한다. 배우자나 자녀의 수발 노력을 지지하고,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장기요양이 지속되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재가서비스가 활성화되도록 가족, 지역사회, 주간보호센터 및 소규모·다기능 시설 등을 활용할 제도적 지원과 함께 커뮤니티 케어를 이끌 기초지방정부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요양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 요양 종사자 급여와 고용 여건이 매우 열악하므로 처우를 크게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통제하면서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적정수가를 보장하는 정치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된다.

셋째, 시설 인프라의 공공성 확충이 요구된다. 2017년 요양기관 2만377곳 중 국·공립은 207곳으로 1% 수준이다. 개인사업자 시설은 1만6375개(80%), 나머지는 법인이지만 모두 민간시설이므로 수익 추구 성향에는 별 차이가 없다. 국·공립 비중을 높이고, 민간시설 질 향상과 공공성 확충을 위한 평가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양질의 인력을 공급해야 한다. 요양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장차 장기요양 분야가 첨단과학기술과 접목된 일자리의 블루오션이 돼 청년에게 더욱 친화적인 일자리가 되도록 과감한 재정 투자를 해야 한다. 이는 결국 양질의 서비스로 연결되고, 국민은 더 많은 장기요양보험료를 낼 용의를 가지게 된다. 이런 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초고령사회에서 양질의 노인장기요양이 지속가능할 수 있게 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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