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오래전부터 일상생활이나 풍경, 사물 등 풍속을 묘사한 목판화가 있었는데 이를 ‘우키요에(浮世繪)’라 한다. 우키요에는 19세기 중엽 유럽으로 수출품과 함께 전파되어 유럽인을 일본문화에 심취하게 하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보통 ‘자포니즘(Japonism)’이라 한다. 특히 인상파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고흐와 고갱, 세잔, 마네, 로트렉, 드가, 르누아르, 모네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가가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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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문 ‘격렬한 파도’ |
자포니즘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일본 작가는 단연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다. 그의 감각적인 작품은 수출 도자기의 포장지로 프랑스에 상륙하여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이 작은 시작은 결국 자포니즘이란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낸다. 호구사이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라는 작품인데, 후지산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파도를 단순화하여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마치 훗날 자포니즘의 물결을 예견이라도 하듯 파도의 강렬한 기세를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호쿠사이보다 15년 먼저 태어난 조선의 천재 화가인 김홍도(金弘道, 1745~1806)와 이인문(李寅文, 1745~1821)도 호쿠사이 못지않은 바다 풍경을 여러 점 남겼다. 김홍도는 주로 격렬한 파도 속에서 유유히 뱃놀이하는 모습을 그리거나 달마, 관음보살이 물결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광경 등을 다양하게 그렸다. 이에 비해 김홍도의 다정한 동갑내기 친구 이인문은 김홍도만큼 다양하게 바다를 그리지는 않았으나 강렬한 감동을 주는 명품 한 점을 남겼다.
이인문의 ‘격렬한 파도’라는 작품은 김홍도나 호쿠사이의 바다 그림 못지않게 꿈틀거리듯 울렁이는 큰 파도를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인문의 파도는 호쿠사이의 것보다 더욱 강렬한 물결을 세련된 필치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어 더 한층 인상적이다. 조선 최고의 기교를 지녔던 화가답게 휘몰아치는 물결을 거대한 산맥처럼 그리고 그 끝에 파도의 눈과 부서지는 포말을 감각적으로 그렸다. 파도 너머에는 바닷물 위로 피어오르는 운해를 그려 바다의 거대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인문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파도치는 물결의 한 부분을 그렸다기보다는 자연의 오묘한 질서와 신비로움 속에 도도히 살아 있는 인간 정신을 표현하고자 한듯하다. 호쿠사이의 파도를 그린 목판화 한 점이 유럽인을 매료시킨 것처럼 이인문의 물결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을 감동시킬 요소가 충분하다. 이 그림을 보면서 조선 시대 회화 정신도 이인문의 파도를 타고 세상에 널리 퍼지길 기대해본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