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부산 경제를 이끄는 두 산업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 먼저 금융이다. 한국거래소를 비롯해 여러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이 한 건물에 입주해 긴밀한 협업 체계를 갖추고 있다. 부산이 세계적 금융산업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또 하나는 해운이다. BIFC 상층부에 오르면 창밖으로 부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이 부산항의 역동적인 모습이다. 초대형 선박이 드나들고 크레인을 통해 수많은 컨테이너 화물이 오가는 현장을 보면 부산의 실물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해운산업 중심지임을 절감한다.
금융과 해운은 비슷한 면이 많다. 두 산업이 부산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지정학적 특성 덕분이다. 부산은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물류 중심지로, 대륙 운송의 종착지이자 해양 운송의 출발점이다. 육로와 수로의 접점이라는 점에서 시카고, 싱가포르 같은 세계적 금융중심지와 유사하다. 이런 지역에서는 빈번한 상품거래 중에 생기는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시장, 그중에서도 미래 상품거래를 사전에 결정하는 파생상품시장이 발달했다. 부산 역시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필연을 바탕으로 1999년 선물거래소가 설립됐고, 2005년 한국거래소가 출범하면서 주가지수, 개별주식, 통화, 금, 석유 등 다양한 거래대상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명실상부한 파생상품거래의 메카가 됐다. 2009년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지정되면서 글로벌 금융도시 기반은 공고해졌고, 한국거래소 역할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졌다.
선박이 화물을 싣고 운항하려면 선체 하부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바닷물을 적절히 채워야 한다. 선박평형수라 불리는 이 바닷물은 기상이 악화될 때 선박이 전복되는 것을 막고 프로펠러를 수면 아래로 완전히 잠기게 해 최대 추진력을 발휘하게 한다. 파생상품은 선박평형수와 비슷하다. 자산 투자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경제 상황 악화는 자산 가치 하락을 낳는다. 이때 파생상품은 헤지 역할을 해 위험을 줄이고, 투자 전략을 실현시켜 최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도록 해준다. 시장참여자의 가격변동 리스크를 줄여주는 위험관리는 파생상품의 본질적 기능이다.
파생상품은 투자자의 자산운용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컨테이너는 1970년대 국제 표준화가 이뤄졌다. 그전에는 해상 운송비 절반이 인건비였으며, 바다를 건너는 비용보다 짐을 싣고 내리는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표준화된 컨테이너 도입으로 비로소 해상 운송 시대가 열렸다. 금융에서 컨테이너는 표준화된 금융상품이라 할 수 있다. 파생상품은 표준화된 금융상품을 만드는 데 널리 활용된다. 저금리 시대에 더 나은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파생상품을 이용한 다양한 금융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우리가 직접 파생상품시장을 통해 거래하지는 않지만 모르는 사이에 파생상품의 수익구조가 결합된 투자상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파생상품은 투자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투자대안으로 널리 활용된다.
한국거래소는 위험관리와 투자기회 확보라는 파생상품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고자 많은 노력을 한다. 충분한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투자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파생상품시장 이해도를 높이는 일을 지속한다. 까다로운 규제를 개선하고 새로운 상품을 상장해 다양한 투자 기회도 제공한다. 또 선진 인프라를 도입해 더 많은 투자자가 참여하는 환경을 만든다. 올해 5월 금융당국과 함께 ‘파생상품시장 발전방안’을 발표해 시장 기반을 확충하고, 시장자율성과 안정성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 눈여겨볼 노력 중 하나다.
올해는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선정된 지 10년 차 되는 뜻깊은 해다. 부산이 동북아 금융중심지로 우뚝 서려면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짧게 몇 십 년, 길게 몇 백 년간 금융인프라를 구축하고, 혁신적 금융상품을 만들어 금융중심지로 입지를 다진 런던 시카고 등이 그렇다. 10년간 기반을 닦았다면 앞으로 10년은 크게 도약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한국거래소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마음가짐으로 부산이 파생상품 금융중심지로 우뚝 서도록 최선의 노력을 계속하겠다.
한국거래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