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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채워주는 맛, 스며드는 맛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11 19:44:17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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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발행된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겨우살이의 지혜-콩’이란 제목의 기사는 영양 면에서 콩의 장점을 설명하고 다양한 콩 요리를 소개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음식이 있었다. 원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여백이 많은 순두부는 육신에 스며드는 맛이다.
“▲김치순두부=황해도 지방의 음식으로 콩을 불려 맷돌에 간 후 베자루에 걸러내 끓이면서 신김치를 송송 썰어 넣는다. 물을 꼭 짠 김치를 넣고 끓이면 김치에 콩물이 순두부처럼 엉기게 된다. 식기 전에 양념장을 곁들여 먹으면 시원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이 음식이 얼마나 매력적인 음식인지 가늠하려면 두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콩을 물에 불린다. 2. 불린 콩을 맷돌에 간다. 3. 콩즙을 베보자기로 걸러 비지와 콩물을 분리한다. 4. 콩물(두유)을 끓인다. 5. 끓인 콩물에 간수를 친다. 6. 단백질이 굳어 순두부가 만들어진다. 7.순두부를 틀에 넣고 물기를 빼면 두부가 완성된다.

두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6번이다. 물에 녹아 있던 콩의 수용성 단백질이 간수에 의해 몽글몽글 덩어리가 지기 때문이다. 두부 장인들은 이를 두고 “두유가 간수를 먹는다”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 두유가 간수를 먹으면 순두부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던 단백질이 형태를 갖는 극적인 순간이다.

황해도식 김치순두부가 매력적인 것은 바로 이 과정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천일염을 오래 두면 아래로 탁한 액체가 빠지는데 이를 간수라 한다. 간수에는 염화마그네슘, 염화칼륨 등이 녹아 있는데 이런 성분이 단백질 응고제 역할을 한다. 황해도식 김치순두부는 신김치에 남아 있는 소금기가 간수를 대신한다. 농축된 간수 대신 미량의 나트륨이 간수 역할을 하기에 김치 주변으로 성글게 순두부가 맺힌다. 이것은 콩이 두부가 되는 과정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들이 만든 재기발랄한 음식이다. 먹어보지 않아도 그 맛이 얼마나 담백하고 새초롬할지 능히 짐작된다.
좋은 콩을 사용해 솜씨 있게 만든 순두부는 온기가 가시기 전, 약간의 소금이나 간장을 쳐서 먹을 때 가장 맛있다. 소금은 순두부에 녹아 있는 단맛과 고소한 맛을 아낌없이 끌어낸다. 콩으로 만든 간장과 두부는 한 핏줄답게 서로 끌어당겨 단맛과 감칠맛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나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상상 가능한 ‘그 맛’을 생각하며 한동안 가슴앓이했다.

채워주는 맛과 스며드는 맛. 세상에는 두 종류의 맛이 있다. 순두부에 갖은 양념과 부재료를 넣고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인 얼큰한 찌개는 허기를 채워주는 맛이다. 겨울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인생의 추위를 녹이기 위해서는 육신 구석구석 스며드는 맛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너무 꽉 차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보다 느슨해서 스며드는, 삶의 스산함을 채워주는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가 오랫동안 황해도식 김치순두부를 마음에 품었던 이유다.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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