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위기감으로 인해 사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암환자에게서 더러 보는 모습이다. 병증이 그리 심하지 않는데도 죽음을 걱정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바람에 위중해지곤 한다. 뱅크런(bank run·은행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도 상당수가 통제되지 않은 과도한 위기감이 초래한 파국이다. 2015년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채무 상환에 실패한 뒤 하루 만에 15억 유로가량의 예금이 빠져나가면서 금융 기능이 마비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위기감이 위기를 증폭시킨 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0일 발표한 ‘지역경제 현황 및 전망’ 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현상을 목격한다. 서울을 제외한 6개 광역시와 8개 도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 13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울산시민의 지역소멸 우려도(78.4%)가 가장 높다. 울산의 경기 악화 폭(전년비 -37.2%)과 일자리 감소 폭(〃-38.4%)이 가장 크긴 하나, 그렇더라도 지역소멸 우려도가 최고로 나타난 건 뜻밖이다. 지난 9월 통계청이 공개한 2017년 1인당 가처분소득에서 울산(2195만6000원)이 서울(2223만7000원)에 처음으로 뒤지긴 했지만,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울산(6537만 원)이 압도적인 액수로 1위를 고수하는 등 다른 지역보다 나은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울산시민의 위기감은 ‘산업 수도’ 울산의 위상을 떠받쳐온 조선·자동차산업의 침체 때문이다.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뒤 울산은 줄곧 한국 제조업의 메카를 자부해왔다. 그러다 불황으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 절차에 들어가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면서 울산시민의 위기감이 지역소멸을 염려할 정도로 고조된 것이다. 울산 정치·행정의 파행 탓도 크다. 2017년 9월 고래고기 사건으로 시작된 지역 검찰과 경찰의 갈등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태 수습은커녕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까지 더해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그런데도 사건 연루자와 책임자들은 “나는 모른다”며 발뺌하고 있다. 누구 한 명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경제 위기 극복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정치가 경제와 민생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를 보면, ‘지나친 위기감이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말은 정치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무책임한 정치가 오히려 위기감을 키워 사태를 악화시키는 까닭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