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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누가 글을 쓰는가 /김이듬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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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2-12 19:30:34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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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는 평전에 이렇게 쓴다. “나는 꿈에 잠길 때마다 단 몇 분만이라도 우리 집 개의 뇌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세상의 사물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인가?”

사람의 굳어진 사고가 아니라 다른 존재의 시선으로 최초의 하루를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문득 겹눈이 생겨난다든가 겨드랑이가 가려워진다면, 작가 이상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알다시피 파브르는 곤충작자였고 이상은 건축학도였다. 인문계를 나왔다거나 유명한 문예창작학과를 다닌 바도 없다.

며칠 전에 나는 이런 사연이 든 메일을 받았다. “저는 이제 막 취업하게 된 27세 사회초년생입니다. 저는 문과출신인데, 어쩌다보니 ‘공대 비율 90%’에 육박하는 회사에 들어왔네요. 사실 ‘될까?’싶었는데,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매일매일 제 빈틈을 들킬까 두려워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상사 분들은 저에게 ‘문과적인 논리와 상상력’을 기대하며 저를 뽑았다고 하세요. 하지만 저에겐 그런 게 없는 것 같고, 동기들이 당연히 아는 기본 개념을 모를 때도 많고요. 부여받는 업무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단계를 늘 넘어서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힘들고 늘 경직되어 있어요. 이런 저, 실수하지 않고 잘 해나갈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젊은 여성에게 책을 읽고 짬짬이 글을 써보시라고 했다. 하다못해 단상 메모나 짧은 일기라도 적어보기를 권했다. 연필로 간신히 쓰는 미음, 이응 하나가 어쩌면 자신과 타인을 침착하게 응시하는 가장 큰 창문이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조언을 하며 몇 권의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이 문장은 김초엽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나오는 대화이다.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작가의 질문들이 무척 신선했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책을 그녀(사회초년생)에게 권했다. 김초엽은 공대 출신의 20대 여성 작가인데 묘하게도 과학과 문학이 결합된 멋진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쓰고 있었다. 자신이 몸담은 세계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져 적응하기 어려운 이나 또 다른 도전을 시도하려는 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문과이기 때문에, 혈액형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등 뭉뚱그리는 잣대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그녀가 회사 구석에서 와락 울음을 터트려야 하는 터무니없는 상황이 그려졌다. 새롭고 낯선 직장에서 실수를 할까봐 두려움에 떨며 업무에 자신이 없다면, 식물학자 호프 자런의 에세이 ‘랩 걸’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호프는 “과학자라서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단순하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객관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과학의 세계에서 솔직하게 고백적인 에세이를 쓰는 실험실의 여자, 호프는 과학논문이 아니라 그 책을 쓰면서 스스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여성 과학자로서 엄마로서 겪은 편견과 차별에 관해서도 쉬운 문장으로 털어놓으며 타인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문과적인 논리와 상상력을 기대하는’ 상사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조바심과 불안에 떨기보다는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면 된다. 세상 모든 이에게는 논리와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다. 발현하는 방법 중에는 읽고 쓰기가 있다. 지금부터 그것을 키워볼까? 모든 씨앗은 대담하니까.

미국의 영화감독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보면 버스 운전기사인 패터슨은 어두운 불빛 아래 책을 읽고 틈날 때마다 시를 쓴다. 그는 반복적이며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빗방울이 만드는 파문의 둥근 차이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연일 비바람 불어닥쳐도 그칠 날이 있다는 걸 인식하는 버스기사이자 시인이다.

노점상에게도 일용직 노동자에게도 독서할 여유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우리들을 과속과 추월, 사고로 몰아가는 세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버스 운전하다가 신호에 걸렸을 때 떠오르는 시 구절 하나 메모하는 패터슨이 나오려면 일한만큼 최소한의 휴식과 임금은 보장되어야 한다.

시인·책방이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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