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필자는 서울의 북촌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당시 북촌은 도시형 한옥이 밀집되어 있어 서울시 조례에 따라 한옥보존지구(제4종미관지구)로 지정되어 있었고, 이를 해제해 달라는 주민 시위가 극성을 이루고 있었다. 올림픽 후 개발시대의 후유증이 본격화되던 시점과 맞물린 때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북촌은 쏟아지는 관심이 ‘불편해진’ 서울의 보석 같은 곳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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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또 하나 예를 든다. 1970년대 초반, 전국 도시 외곽에 둥그런 모양의 그린벨트가 그려졌다. 엄청난 양의 토지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버렸다. 의도와 목적은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토지 소유자들에 대한 배려 부족에 따른 불만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개발제한이 설정되지 않았다면 전국 대도시와 위성도시가 모두 연결되어 거대도시를 이루었거나 전 국토가 난개발되고 말았을 것이다. 두 예는 극단으로 상반되지만, 공통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다. 도시규제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선택이었다는 점과 도시규제로 인해 손해 보고 고통받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시는 시민의 교육·경제·문화 수준과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 이 변화를 올바르게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미래에 변화될 인식과 삶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이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환경과 역사문화를 다음 세대에 올바르게 물려주는 일을 최우선으로 꼽고 싶다. 사실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서 시도되어 왔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만연된 개발주의와 대자본 중심 물질문명 속에서 개인들의 작은 기증을 통해 지역 역사환경을 지켰던 내셔널트러스트운동과 다양한 동식물의 온전한 서식처이자 수려한 풍광의 대규모 자연지대를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제도를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20세기 초·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도시경관을 공공재로 이해하고 이를 보호하려는 다양한 제도가 탄생하면서 공익 추구를 위한 도시규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1950, 60년대 도시재개발 물결 속에서, 파리 도심의 역사문화와 도시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 재산권을 규제했던 ‘말로법(Marlaux Act)’이 본격적인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가끔 궁금해지는 장소와 풍경을 나열해 본다. 샹젤리제 거리와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뒷골목들, 뉴욕 맨해튼의 드라마틱한 스카이라인, 교토의 정교한 석조 계단길과 작은 가게가 줄지어 선 풍경, 오래된 광장을 낀 바르셀로나의 신선한 전통시장, 정박한 작은 배들과 어우러진 시드니의 수변보행길, 현란한 야경과 어울리는 홍콩의 오래된 도시 풍경, 수백 년 전과 똑같은 건축물로 채워진 피렌체 도심, 근대역사와 휴양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싱가포르 도심항구 등. 이곳의 탄생과 존재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우연히 탄생되지 않았음은 공통 사실이다. 그 사실의 중심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도시규제가 자리한다. 엄격하지만 합리적이며 체계화된 도시규제들이 공간질서의 근원을 제공하고, 이에 오래전부터 작동하고 있는 장소가치의 공감이 더해지면서 이곳들은 국제적인 명소가 되었다.
여기 한 가지 핵심 논점이 있다. 개인재산권 손실에 대한 문제다. 이러한 손실은 보통 개발용적률을 축소하는 다운조닝(down zoning)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도시규제에는 개발용적률을 높이는 업조닝(up zoning) 경우도 있다. 업조닝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샌프란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다에서 보이는 입체감 있는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낮은 구릉지 위를 도심지역으로 선택하고 용적률을 올렸다. 물론 도시의 맥락과 풍경을 지키기 위해 업조닝을 택하는 경우는 매우 희소하며, 대부분 다운조닝이 선택된다. 의문이 든다. ‘다운조닝 성격의 도시규제는 모두 재산권을 침해하는가?’하는 것이다. ‘규제를 받으면 오히려 경제 가치가 올라갈 수는 없는가?’라는 질문도 뒤따른다.
도시규제로 해당 지역의 차별성과 정체성이 강화되고, 또한 도시규제가 지역경제와 사회문화적 가치 향상의 원동력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다면 도시규제에 대한 반대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입증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장소·지역마다 편차가 있다는 점이다. 규제로 인한 경제효과의 수혜자가 지금의 내가 아닐 수 있기에 갈등이 발생하고, 이를 설득할 자신도 없기에 시작조차 못 한다. 그런데 외국 선진 도시들은 도시규제를 어떻게 적용하여 해당 지역의 강점을 키우고 또 명소로 가꾸어가고 있을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강력한 실험’이다. 본보기가 되는 시범사례 즉, 규제받을수록 경제 가치가 높아진 실제 사례를 마중물로 확보했다. 처음은 힘들었겠지만 초집중하여 이를 달성한 도시들의 도시규제는 지금도 수월하게 확장되고 있다. 둘째는 ‘체계적인 시민교육’이다. 도시규제와 관련된 인식의 간극을 줄이는 일은 생각 변화, 즉 지역에 대한 애착심의 발로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지역애착심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기에 선진 도시들은 유·소·청년기부터 지역가치에 대한 학습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 지역애착심의 양을 늘려가는 일, 그것이 성공 요인인 것이다. 세 번째는 ‘다양한 인센티브 발굴’이다. 재산권 손실에 대한 보상책을 말한다. 세금 감면이나 수리비 지원 등 직접형도 있지만, 소프트웨어 즉 기술 전승이나 각종 마케팅 지원 그리고 명예심과 자긍심을 높여주는 창의적 인센티브가 중요하게 채택된다.
사실 이러한 세 가지 특징 모두 ‘행정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민을 설득하고 함께 공감하기 위한 실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래 삶과 연동되는 라이프 스타일이 크게 변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축소 도시(shrinking city)’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미래도시에 대한 우리 선택은 진정으로 지혜로워야 한다. 오해는 풀고 이해는 높여, 지역마다 도시규제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확장되어 가길 기대해 본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