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무대 뒤로 퇴장한 부산 등산의 역사 /이진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18 19:31:58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에 고상돈 대원의 떨리는 목소리가 베이스캠프의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 해발 8848m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우리나라 산악인이 처음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산악 후진국이자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원정대장을 맡았던 김영도 대한산악연맹 고문이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일’이라고 회고할 정도로 어려운 여건을 딛고 이뤄낸 일이었다. 히말라야 고산 원정은 당시 선진국들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에 불과한 나라가 세계 8번째로 최고봉에 오른 것이다. 이후 한국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고산 등반에 뛰어들어 ‘히말라야 14좌 완등’ 산악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가 됐다.

이처럼 감히 꿈꿀 수도 없던 일, 세계 최고봉에 고상돈이 올라설 수 있었던 건 대원 18명 모두의 땀과 노력, 희생이라는 발판 덕분이었다. 김영도 원정대장과 장문삼 등반대장, 박상열 부대장에 이어 20·30대의 패기 넘치는 젊은 산악인들이 제각각 역할을 분담해 정상 등정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부산지역 산악인인 곽수웅과 전명찬도 있었다.

부산 산악계에는 신업재 성산 오점량 등 지역 산악운동의 초석을 다지고 발전을 이끈 산악인이 한둘이 아니다. 이 가운데서도 곽수웅과 전명찬은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만으로도 그 당시의 지역 산악계에서 특출난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원정대의 막내였던 전명찬(당시 25세)은 식량 담당을 맡아 등정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지병인 간경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1994년 42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곽수웅은 수송을 맡아 100여 일에 걸친 대장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1977년 한국 원정대가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때 부산에서 선박 편으로 인도 캘커타(지금의 콜카타)로 실어 보낸 물품은 알루미늄 사다리 100개와 텐트 30동, 100여 일 동안 먹을 식량 등 총 18t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처음 나선 원정에서 이 물자들을 간수하고 적절하게 배분하는 중책을 곽수웅은 김병찬과 함께 맡아 차질없이 해냈다.

170㎝가 채 되지 않는 키에 힘이 장사였던 곽수웅은 부산 산악계의 작은 거인으로 불렸다. 성산 선생의 인도로 대륙산악회를 통해 산에 입문한 뒤 타고난 체력과 강단으로 전국의 산하를 누볐다. 그런데 곽수웅은 에베레스트 원정보다도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의 명명자로서, 영산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한 칠선계곡 등산로의 개척자로서 지역사회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부울경 지역에서 가끔이라도 산에 다니는 사람 치고 영남알프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친숙한 이름을 지역 사람들에게 선사한 이가 바로 곽수웅과 성산 선생이다. 두 사람은 대륙산악회 소속으로 1971년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다녀온 뒤 사자평 고사리마을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의기투합해 첩첩이 둘러싼 1000m대의 산군에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처음에 산악인들끼리 부르던 이름이 차츰 퍼져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해진 고유명사가 됐다. 칠선계곡 개척 등반도 마찬가지다. 곽수웅은 1964년 ‘지리산 칠선계곡 루트 개척 및 학술조사대’에 참가해 칠선계곡 등산로를 개척했고 그해 겨울에는 지리산 주요 등산로에 표지판을 설치하는 일도 했다. 지역 산악인은 물론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영남알프스와 지리산 모두에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부산 등산 역사의 증인인 곽수웅 선생이 지난 15일 영면했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고생하면서도 근교의 산을 틈틈이 찾았다는 그는 지역 산악계의 원로로서 후배 산악인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선후배와 어울려 기울이던 술잔도 더는 들 수 없게 됐다. 부산 산악계, 나아가 한국 산악계를 풍미했던 산악인이 또 한 명 무대 뒤로 물러나면서 한 시대가 점점 더 희미해지는 듯하다.

생활레포츠부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불꽃축제 숙박비 2배가 기본…여전한 ‘바가지’(종합)
  2. 2[근교산&그너머] <1485> 경북 영주 ‘무섬길’
  3. 3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4. 4“북항돔 공모사업 목숨 걸고…” 전재수 시장 완수 의지 밝혀(종합)
  5. 5태종대 명물 다누비 사라지나…市, 대체 운송수단 검토
  6. 6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7. 7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8. 8尹 선거법 2심도 ‘당선 무효형’…형 확정 땐 국힘 397억원 반환(종합)
  9. 9조선의 궁인데…이름도 옷도 서양식 K-사극, 판타지 세계관 확장 통할까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5일
  1. 1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2. 2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3. 3“왜 사회적 지탄 대상 되려하나” 김대식, 지광에 회생 동의 촉구
  4. 4부울경 全 국회의원 회생촉구 서명…노동청, 지광 출석 요구
  5. 5與 ‘조작기소특검법’ 5일 처리 추진…국힘 “모든 안건 필버”(종합)
  6. 6국힘 “미래기금, 총선용 사금고” 민주 “세수 변동 대비 안전장치”
  7. 7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8. 8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9. 91호기 명단 유출 파일 'MOFA(외교부) 형식, 유출 경위 파악에 주력
  10. 10[속보]李대통령, 사랑제일교회 향해 “버티면 된다는 건 세상에 없어”
  1. 1비스텝 원장 6개월 공석 될 판…내년 사업 어쩌나
  2. 210월 세계 선박 발주량 반토막…韓 점유율은 22% ‘존재감’
  3. 3철새도래지서 즐기는 하이엔드 커피
  4. 4쿠팡 Inc 올해 누적적자 2조 육박 ‘역대 최대’(종합)
  5. 5美 의회 장악 민주, AI 규제하나…韓 반도체 업계 촉각
  6. 630대그룹 美 계열사 10년새 232% 급증
  7. 7벡스코 ‘26분 정전’ 원인은 합선…노후 전력설비 개선 추진
  8. 8대양전기공업 배당성향 30%로…주주가치 제고
  9. 9“극지연구 데이터 사업화, 기업 신성장 동력으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4일
  1. 1부산불꽃축제 숙박비 2배가 기본…여전한 ‘바가지’(종합)
  2. 2“북항돔 공모사업 목숨 걸고…” 전재수 시장 완수 의지 밝혀(종합)
  3. 3태종대 명물 다누비 사라지나…市, 대체 운송수단 검토
  4. 4尹 선거법 2심도 ‘당선 무효형’…형 확정 땐 국힘 397억원 반환(종합)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5일
  6. 6“양산 충렬사·현충시설 관리인, 10년 연속 특정인 선발 특혜”
  7. 7전남광주 순천대·경북 경국대 ‘지역의대’ 신설
  8. 8폭염에 냉방 꺼 ‘갑질 논란’ 기업, 불법 하도급 의혹 추가
  9. 9기장 리조트 참사 시공사 대표 중형 구형
  10. 10“제조업 AI 전환 적극적 추진…‘부산의 심장’ 활력 되찾겠다”
  1. 1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2. 2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3. 3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4. 4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5. 5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6. 6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7. 7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8. 8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9. 9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10. 10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선출 권력 통제
등골 프로텍터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건강 불평등 해소한다더니…취약지역 외면한 의료버스
AI 악용 부정행위, 수능 공정성 지킬 대책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일상으로의 초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