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충남 서산을 찾았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 서산에서 첫 끼니는 단연 우럭젓국. 음식점 계단을 오르며 곗모임을 하러 온 듯한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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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럭젓국은 서해의 바다와 바람이 우러난 맛이다. |
“1층 아녔어?”
“건물을 샀댜. 1층은 세놓고, 식당은 2층으로 옮기고 3층은 살림집으로 쓴댜.”
순간 내 의문도 함께 풀렸다. 2년 전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1층에 있던 음식점이 같은 건물 2층으로 옮긴 사연이 대충 짐작됐다. 서산 시내에서 10년 넘게 우럭젓국과 간장게장으로 소문난 식당이 드디어 모든 자영업자의 꿈이라는 ‘건물주’가 된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내는 식당이 건물주가 되었다니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집주인 눈치 보지 않고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고객 처지에서야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더불어 또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각 지역의 소문난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가면 막상 제대로 된 전문점을 만나기 어렵다. 우럭젓국이 그렇다. 우럭젓국은 우럭이 많이 잡힐 때 꾸덕꾸덕 말려 두었다가 제사상에도 올리고 구워 먹거나 국거리로 사용했던 것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애당초 외식 아이템으로 개발된 음식이 아니라 지역민의 삶 속에서 잉태된 일상의 음식이란 의미다. 지방자치단체가 향토음식을 발굴하고 홍보하는 과정에서 마른행주 쥐어짜듯 아이템을 찾다 보니 우럭젓국 같은 일상의 음식이, 지역 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우럭(조피볼락)은 서해에서 흔히 잡히는 생선이다. 제철 우럭은 색이 검고, 몸집이 크고, 뼈가 단단하고, 살도 탄탄하다. 횟감으로도 훌륭하지만 꾸덕꾸덕 말리면 그 맛이 더욱 깊어진다. 반건조 우럭의 속살은 대구나 명태보다 훨씬 오밀조밀하다. 수분은 날리고 고갱이만 남은 단단한 뼈를 우리면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이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을 상대할 조미료는 새우젓밖에 없다. 서해안 새우젓은 여느 지역과는 그 위상이 다르다. 콩으로 만든 된장, 간장 역할을 대체하는 필수 조미료다. 말린 우럭, 새우젓 그리고 무와 두부. 무엇 하나 모난 것 없는 것들의 조합은 낯선 이들에겐 심심한 맛이고, 인이 박인 이들에겐 깊고 개운한 맛이다.
문제는 같은 음식을 두고 벌어지는 이 차이다. 관광객은 번듯하고 소문난 ‘맛집’을 원한다. 하지만 지역민은 ‘집에서나 해 먹던 걸 어떻게 파느냐’며 소극적이다. 그 사이를 발 빠른 업자들이 파고든다. 횟집에서도 우럭젓국을 팔고, 간장게장집에서도 우럭젓국을 판다. 지역민은 ‘우리가 먹던 그 맛’이 아니라 하고, 관광객은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니라 한다. 우리나라 소도시의 대부분 향토음식이 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그 집은 지역 주민이 곗모임을 할 정도로 인정하는 곳이고, 나 같은 외지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았으니 ‘맛집’이 분명하다. 우럭젓국은 국물이 졸아들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진국을 머금어 촉촉해진 우럭의 살점을 뜯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 사람이 이 기막힌 맛을 모르다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