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투표로 선출한다. 또 법에 따라 세금을 낸다. 사회의 모든 구조를 움직이는 체계는 헌법과 법률이다.
비교적 근대에 만들어진 속담 혹은 격언 중 ‘법대로 살면 바보’가 있다. 또 살다 보면 방귀 뀐 놈이 성내면서 “법대로 합시다!”를 외치기도 한다. 두 가지 말의 공통점은 어쩐지 법대로 한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뻔뻔한 자들의 대사 같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법대로’의 의미가 이토록 훼손되었을까.
이런 현상은 법원에서도 볼 수 있다. 민사재판에서 판사는 종종 원고와 피고에게 조정을 권하면서 “조정이 안 되면 법리대로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고 한다. 조정은 좋은 것이고 법대로 판결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법관마저 ‘법대로’하는 것이 조정만 못하다고 할 정도이니 도대체 ‘법대로’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법은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관계와 사건을 하나하나 규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일반성과 추상성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어떤 경우에는 법대로 하는 것이 심히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물론 이럴 때를 대비하여 신의칙의 법리(사회상규에 심각히 어긋나는 계약이나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법리)와 법 자체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헌법재판 절차가 존재한다. 그것도 만능은 아니다. 그래서 “법대로 합시다”가 되레 뻔뻔한 항변이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법원은 이런 경우 가급적 조정으로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반면 법이 부당해서가 아니라 당사자 간의 불평등한 관계 때문에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근로계약 관계이다. 노동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유급 휴일’을 보장해야 한다. 하루 8시간을 넘게 일한 노동자에게 시급을 50% 더 줘야 한다. 일을 하다가 다치면 치료비는 물론 치료하며 쉬는 기간에 대한 임금도 지급해야 한다. 임금을 한 달에 한 번 늦지 않게 줘야 함은 당연하다. 임금·근로시간이나 근무내용을 담은 근로계약서는 반드시 문서로 작성해 교부해야 한다. 전체 근로자에게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근로조건(취업규칙)은 문서로 작성하여 공개할 의무를 지닌다. 사장 마음대로 임금을 깎는 등 근로조건을 나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이런 내용은 모두 노동법의 기본인 근로기준법에 담겨 있다. 이를 위반하는 행위는 모두 범죄다. 문제는 상담을 하다 보면 연장근로 가산수당은커녕 퇴직금이나 월급조차 제때 받지 못했다고 호소하는 근로자가 많다는 것이다. 이럴 때 노동부에 신고하라고 권유하면 “그러다 괴롭힘을 당하면 어쩌나요” 또는 “업계에 소문이 나면 어쩌죠?”라는 걱정스러운 답변부터 돌아온다. 사장과 근로자 사이의 ‘갑을 관계’가 존재하는 한 사장이 법을 어겨도 근로자는 불이익이 두려워 말도 못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노동법이 어느 정도 준수되는 기업은 노동부의 입김이 닿는 대기업이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곳이다. 미디어에 비춰진 노동조합은 폭력 등 법질서를 훼손하는 집단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현장에서 겪어보면 노동조합은 사측이 노동법을 준수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 회사 경영진의 비리까지 정화하는 역할도 한다. 즉, 노동조합은 편견과 달리 산업현장의 법치 실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는 10%에 불과하다. 노동조합에 가입된 근로자도 대기업 정규직까지 포함해 10% 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업도 아니고 노동조합도 없는 80% 이상의 근로자에게 노동법은 있으나 마나 한 법인 셈이다. 모든 기업을 대기업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 노동법이 준수되는 국가를 만들려면 누구나 쉽게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우선은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이라는 편견을 조장하는 언론 환경부터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