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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문제는 의식이다 /정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26 18:50:50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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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수년간 살다 온 후배가 얼마 전 푸념을 했다. 한국에 오니 무명작가의 설움을 느끼게 된다고, 더블린에선 오히려 소설가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매 주말이면 시내의 서점에서 소설 낭독회를 하는데 그녀도 종종 초청 받았단다. 그녀가 한국의 소설가란 걸 안 서점에서 한국어 소설을 낭독해주기를 요청했고, 그녀는 한국에서는 낭독해 본 적 없는 자신의 소설을 청중들 앞에서 한국어로 읽었다. 내용을 알아들을 리 없는 청중들이 어찌 들을까 했지만 청중들은 한국어의 리듬이 듣기 좋다며 지겨운 기색도 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문학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예술가들에 대한 공경심도 깊어서 후배는 몇 년간 행복했다고 했다.

한 연극인이 독일의 뮌헨에서 경험한 얘기도 인상적이다. 어느 날, 시내를 가다가 700여 명이 들어가는 극장 앞을 지나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귄터 그라스의 소설 낭독회 안내가 붙어 있었다.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3만 원이나 해서 그 비싼 입장료를 주고 누가 올까 하면서도 들어가봤는데 뜻밖에도 객석이 다 차 있었다. 시간이 되자 귄터 그라스가 직접 의자를 들고 나오더니 무대 한 가운데 앉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런 퍼포먼스도 없이 한 시간여 소설을 낭독한 노작가는 20분간 휴식 후 또 낭독을 시작했다. 그 지겨운 시간을 몇 사람이나 다시 와서 견딜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자리를 떠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말하듯 두 나라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많다. 아일랜드에는 예이츠, 버나드쇼, 사무엘 베케트, 세이머스 히니가, 독일에선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헤르타 뮐러 등 9명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아일랜드에는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조나단 스위프트 등 유명 작가들이 있다. 독일에는 세계문학의 거장인 괴테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곳의 문화예술에 긍지를 가질 때 희망을 갖게 되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자존감의 향상은 문화예술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이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했다고 말한 것은 좋은 예다.

사람은 문화예술을 향유할 때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낀다. 그때 갖게 되는 정서적 만족감은 즐거움과 행복으로 이어진다. 그때 우리의 내면에 감춰져 있던 창의성과 감수성이 풍부해지면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공감 능력도 커진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감하고 협력하며, 타자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는 그만큼 발전한다.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그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세계적 작가가 많이 배출된 것도 오랜 세월 동안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며, 예술가를 우대하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눈앞의 성과에 골몰한다. 배금사상이 만연한 사회분위기가 갈수록 더 그것을 조장한다. 그 속에 환금성이 낮은 문화예술을 하찮게 여기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특히 부산시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은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하룻밤에 불꽃 수십억 원어치를 하늘로 펑펑 쏘아 버릴 수는 있어도 문학관 운영 예산이나 현대미술관에 전시 예산을 배정하는 데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그 결과 문학관은 운영에 허덕이고, 현대미술관은 ‘개점휴업’이며, 문화창작공간 ‘또따또가’의 예산은 냉큼 깎이기도 한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도와다시는 인구 7만 명의 소도시다. 그곳에 현대미술관이 있는데 일본, 대만, 호주, 영국, 벨기에,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세계 13개국 작가와 우리나라의 서도호, 최정화의 작품 등 스무 점이 넘는 미술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길 건너 야외공간에는 세계적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설치미술 여러 점이 전시되어 고즈넉한 도시에 생기를 더하고, 시민에게 자부심을 준다. 그에 비해 인구 350만의 부산이 하는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투자는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도 못 된다.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후손을 위해 앞 세대가 할 수 있는 희망적인 투자이다. 문화예술의 발전은 무성한 숲을 가꾸듯 긴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문제는 의식이다. 부디 새해부터는 문화예술 진흥책을 과감하게 펼치는 부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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