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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영화 진흥은 영화관서 시작된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26 19:17:0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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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나의 관심 분야 가운데 하나다. 과학적, 철학적 탐구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영화관’에 대해 각별히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이 생각의 화두를 던졌다. 우선 흥행 안 될 거라는 ‘낙인’이 찍힌 영화라서 그런지 상영관을 찾기도 힘들었고, 영화의 길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관람을 체념하게 되었다. 앞서 이 영화를 관람한 평론가에게 무심코 물었다가 내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아이리시맨’의 상영시간은 3시간 반이다. 그런데 우리 영화관에서는 중간 휴식 시간 없이 관람했다고 한다.

유럽에 있을 때 영화 관람 중간의 몇 분짜리 짧은 휴식 시간을 만끽하곤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상영시간이 2시간 정도인 영화에서도 종종 짧은 휴식 시간이 있었다. 연극 공연 극장에서 행해지던 막간 휴식이라는 전통을 영화에서도 이어받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문화 향유라는 관점에서는 아주 기분 좋은 순간들인 것이다. 그 시간에 영화 감상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고 간단한 음료로 목을 축일 수도 있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도 있다. 이는 영화를 좀 더 편안하고 풍족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이다. 아무튼 ‘각박한’ 영화관 사정은 우리나라 영화계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센서이기도 하다.

연말이라 2019년을 결산하는 뉴스가 나온다. 영화계 결산은 눈에 띄게 늘어난 관람객 수로 시작한다. 이달 말까지 2억 2000만 명의 관람객이 예상되며 올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다섯 편에 이른다고 한다. 주로 양적인 성취에 관한 뉴스다.

물론 영화는 과학·기술 및 경제 영역과 밀접하다. 그래서 양적인 차원이 중요하다.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하며 태생적으로 산업적이자 상업적이다. 뤼미에르 형제는 발명가였으며 그들이 1895년 영화를 처음 상영할 때에도 관객이 있었고 관람료가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에는 대중이 전제된다. 영화이론가 벨라 발라즈의 말대로 “영화 예술의 영역에서는 영화가 있기 전에 먼저 대중이 있어야 하고, 영화의 제작에서는 사전에 그 영화를 알아준다는 보장이 있어야 제작자가 믿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딱히 ‘상업영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영화가 대중을 전제할 때 그 대중은 관람객들이다. 그러면 관람객들의 실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은 어디인가. 영화관이다. 이런 의미에서 관람객 중심으로 영화 통계를 내고 가치 판단을 한다. 그런데 영화 산업이 지속적으로 많은 관람객을 확보하려면 그들을 ‘질적으로’ 대해야 한다. ‘관람객을 위한 영화관’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요즘같이 첨단 디지털 매체를 사용해 곧바로 전송되는 영화를 손 안의 기기로도 보는 시대에 영화관을 논하는 것은 너무 아날로그적 사고라고 할지 모른다. 물론 영화관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여러 번 쇠퇴 위기를 맞곤 했다. 그 첫째는 텔레비전의 등장이며, 이어서 컴퓨터와 디지털 비디오디스크의 등장 그리고 지금은 오버더톱(OTT) 서비스의 등장 등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영화를 대중 속으로 확장시키는 매체라는 점에서 영화관은 위기 때마다 이들 매체와 동맹을 맺으며 관람객을 위한 ‘영화의 고향’이라는 역할을 지난하게 해오고 있다.

영화관은 한편으론 고전적 예술 감상의 장소인 미술관, 박물관, 음악당 등과도 차별됨으로써 이들과 첨단 디지털 영상·음향 매체들 사이에서 문화적 균형을 맞추고 있다. 전통적 예술 감상의 장소들에 비해 영화관은 훨씬 더 일상적이다. 그래서 한때는 영화관에 가는 일이야말로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 활동의 유일한 형태’라는 평까지 받기도 했다. 다른 한편 디지털 매체의 활용에 비해 영화관에서의 관람은 훨씬 덜 중독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삶에 문화적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삶에 균형을 찾아주는 모든 것은 고맙다.

영화관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관람의 두 가지 차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은 ‘느림’과 ‘다름’이다. 우리나라 영화 발전에 비해 관람 행위는 아직 ‘소비’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영화가 산업이고 상업인 이상 소비적 차원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관에 가는 것이 돈을 지불하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적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더욱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문화적 향유의 공간이다. 우리가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 단순히 먹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영화관에 가는 것은 단순히 보기 위해 가는 것만은 아니다. 음식이 패스트푸드가 될 때 문제를 일으키듯이, 영화도 ‘패스트 무비’가 될 때 악성 부작용이 많아진다.

인간의 창작품을 창의적으로 즐길 때 우리는 문화 활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창의적 즐김이란 남들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성에 따라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영화 관람에서 ‘다름’의 차원을 생각하게 하며,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문제에 직결된다.

영화 산업과 상업에 영향력을 가진 기업들은 대중의 취향이라는 핑계로 사사건건 ‘문화 결정자’의 힘을 발휘하려 한다. 이는 최근 상영관 독과점 문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를 비판하는 영화인이 말했듯이 좋은 영화를 일정 시기에 몰려가서 보는 것보다 길게 나누어 보면 다른 영화에 피해 안 주고 더욱 많은 사람이 더욱 충실하게 영화를 감상하며 행복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개봉관 독과점은 외국 영화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런 독과점 현상이 계속되면 국내 영화끼리도 ‘별도의 스크린쿼터제’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불행한 일이다. 현재의 영화관 운영 방식이 관람객을 식상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선제적 개선 없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뒤늦은 후회를 할지 모른다.

영화제작과 영화제를 위한 진흥책은 어느 정도 시행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영화인인 관람객을 위한 영화관 진흥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전문가들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영화관 문화가 영화 진흥 전체에 피드백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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