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국 일본에는 ‘유품정리인’이란 직업이 있다. 10여 년 전부터 새로 등장한 특수청소업 종사자다. 혼자 살다가 숨진 사람의 집을 치우고, 남겨진 각종 물품을 유족 대신 처분해 주는 일이다. 연간 고독사가 밝혀진 것만 3만2000여 건에 이르고, 전체 가구의 35%가 1인가구인 일본 사회의 짙은 그늘이 투영된 셈이다. 무연(無緣)사회라는 신조어도 여기에서 생겨났다. 9년 전 일본 NHK가 이 같은 타이틀의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퍼져나갔다. 그 내용은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돼 관심을 모았다.
무연사회를 떠올린 것은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서다. 위험수위를 넘어 아예 제어불능 상태에 빠진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일본의 전철을 밟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통계청이 내놓은 ‘한국의 사회동향 2019’ 보고서는 그 점에서 새삼 충격을 준다. 향후 48년 뒤인 2067년에는 국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46.5%(1800만 명)에 달하는 반면, 15~64세의 생산연령 인구는 45.4%(1740만 명)까지 줄어들 거라는 얘기다. 이는 청년·중장년층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사회로 바뀌는 걸 의미한다. 고령 자녀가 초고령 부모를 돌보거나 간병하는 ‘노노 케어(老老 care)’가 그때는 아주 흔한 모습이 되는 거다. 불과 4년 전에는 생산연령대 6명꼴로 65세 이상 인구 1명을 먹여 살렸던 데 비하면 확연한 차이다.
게다가 소득이 낮을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건강 불평등’ 현상도 점점 깊어지게 된다. 예컨대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평균 기대수명 차이가 2030년께에는 7세 가량 벌어진다고 한다. 저소득층은 정기적인 치료 같은 건강관리 면에서 취약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국내 1인가구 증가세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전체 가구의 29% 수준이나, 그 비중이 더 높아질 게 뻔하다.
주지하듯이 그간 정부의 출산율 높이기 정책은 거의 헛돌았다. 13년간 153조 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별다른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제는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 열쇠는 지방 살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치분권 실현이다. 가임여성·청년층의 감소 혹은 유출로 기초자치단체가 사라지는 ‘지방소멸’이 그걸 말해준다. 우리의 소멸 위험지역은 해마다 증가하면서 올 10월 전국 시·군·구의 43%(97개소)가 그에 포함됐다. 부산은 원도심 4개 지역의 소멸시계가 더 빨라지는 추세다. 올 10월만 해도 부산의 출생아 수가 1435명으로 역대 최저치이고, 그 감소율(5.9%)은 전국 평균보다 배나 큰 실정이다.
국내 최고 인구전문가로 불리는 서울대 조영태 교수의 지적도 다르지 않다. 그는 최근 한 포럼에서 이렇게 밝혔다. “오는 2100년에는 한국의 인구가 (내국인 기준) 1800만 명까지 떨어질 걸로 예측됩니다. 그리고 인구의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아가는 시대가 될 겁니다”. 그러면서 출산·보육·복지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과학기술 등을 통해 지방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핵심을 찌른 것으로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치분권 강화를 위한 법안들은 여야의 정쟁과 무관심 속에 떠내려갈 판이다. 국회에 벌써부터 계류 중인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과 지방일괄이양법안 등 7개 법안이 그렇다. 전국 지방정부·의회 협의체와 분권단체들이 조속한 처리를 숱하게 촉구했는데도 들은 체 만 체다. 지방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다. 해결책은 아무래도 차기 총선에서 반자치분권 정당·후보를 표로 심판하는 수 밖에 없겠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문제는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럼에도 현재 사안이 아닌 미래의 일로 접근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지금 추세로 가면 노노케어가 만연하고,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 무연사회에 빠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일본이 반면교사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일명 ‘극점사회’다. 일본에서 출판된 저서 ‘지방소멸’에 보면 나온다. 인구가 몰려드는 수도권이나 대도시권만 생존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나라 전체의 동반 인구감소를 가속화시킨다. 인구가 밀집된 지역은 대체로 출산율이 낮다는 점에서다. 그렇게 되면 수도권이고 지방이고 다 죽는다.
내년은 국내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30년이다. 그러나 자치분권은 요원하기만 하다. 전국 시·군·구 중에서 재정자립도 30% 미만이 66%이고, 직원 월급도 지방세로 충당하지 못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거듭 말하지만, 모든 것이 수도권과 중앙정부에 집중된 구조가 지속되는 한 지방의 미래는 암울하고 저출산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그 점에서 내년은 자치분권 실현의 원년이 되고, 지방분권 개헌의 불씨가 살아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