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어떤 일을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는 부당한 사고방식을 꼬집는다. 이걸 뒤집은 말이 ‘내불남로’다. ‘내가 하면 불륜, 남이 하면 로맨스’로 풀이한다. 어떤 사안에 관해 자기를 무작정 폄하하고 상대를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높이고 보는 태도를 뜻한다.
나는 ‘내불남로’라는 표현을 유튜브에서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과 일본 전문가 염종순 박사가 나누는 대담을 통해 처음 들었다. 염종순 박사는 일본에서 30여 년 살면서 일본 지자체·중앙정부 공무원으로 일했고, 석·박사 학위를 땄고, 기업 활동을 했고, 현재 디지털 산업 부문에서 일한다. 그는 지난 7월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한국을 겨냥해 무역 마찰(경제전쟁)을 일으켰을 때, 한국 일부 언론과 이른바 ‘일본을 안다’는 일부 기성세대 지식인이 ‘내불남로’에 갇힌 채 분석과 전망을 마구 쏟아내는 걸 유심히 봤다고 한다.
염 박사가 꼬집은 한일 경제 갈등 초기 단계 ‘내불남로’ 이야기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 “어디 감히 아직 수준 낮고 약한 한국이 수준 높고 강한 일본에 덤빈단 말인가.”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치밀하고 준비를 잘한다.” “우리보다 한 단계 위인 일본이 저렇게 나올 때는 뭔가 일본답게 정교한 계획을 세웠다는 뜻이니 우리는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한국이 하면 불륜, 일본이 하면 로맨스, 내가 하면 불륜, 남이 하면 로맨스라는 식의 주장으로 염 박사는 받아들였다.
한일 경제 마찰 6개월째인 지금 돌이켜보자. 양상은 어떻게 전개됐나? 한국 쪽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그간의 변화상이 많이 드러난 형국이다. 1988년 무려 15배였던 한국과 일본 GDP 격차가 지금은 세 배로 좁혀졌고, 1인당 GDP도 한국 3만2056달러, 일본 4만105달러로 별 격차가 없으며, 디지털 산업·경제·인프라 쪽은 한국이 앞선다는 식의 통계가 쏟아졌다. 일본보다 면적이 4배나 좁은 분단 상태 한국이 이뤄낸 일이다. 일본은 임진왜란과 3·1만세투쟁 이어 또 ‘한국 민중’을 계산에 넣지 못하는 큰 실수를 반복했다. 한국 민중은 일본 민중과는 달리 또 들고일어나 불매운동을 일으켜 물결을 주도했다. 역사는 반복됐다.
쉽게 정리하면, 내불남로의 한일관(觀)은 틀렸다. 그러면 왜 한일 경제갈등 초기 한국에서 내불남로 성격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을까? 좁고 얕고 시선을 가진 일부 언론 그리고 충격적 과거 경험과 고착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통찰력 없는 일부 기성세대 탓이다. ‘일본을 좀 안다’는 기성세대가 일본을 ‘감히 범접하기 힘든 높은 수준의 나라’ ‘뭐든 치밀하게 열심히 연구·준비하는, 우리와 다른 차원의 선진국’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들 자신만의 탓은 아니다. 그분들이 살면서 봐왔던 일본은 그러했다.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은 실제로 정말로 대단했다. 한 저명한 야구해설위원이 1960년대 고교 시절 일본에 야구 경기를 하러 갔을 때 “건물마다 설치된 자동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 한국은 그런 문을 달 건물조차 없었을 때다.
기성세대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지식·경험이 통찰력과 만나야 비로소 지혜가 된다. 통찰력을 가지려면 끝없이 변하는 ‘현상’을 부지런히, 편견 없이 관찰해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 즉 본질을 봐내야 하는데 일본에 관해서만은 옛 체험에 잘 갇힌다. 내불남로에 갇힌다.
이제 내불남로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이때 굉장히 중요한 원칙이 있다. 한일 관계에서 내불남로 극복이 ‘이제는 한국이 더 우월하다’는 식의 우월주의 같은 길로 가서는 안 된다. 한국·일본은 서로 동등하고 평등하며, 서로 배울 소중한 이웃임을 인식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평등·동등’ 원칙을 견디지 못할 사람이 눈에 띈다. 그 첫째가 바로 일본 극우다. “한때 우리 식민지였던 나라가 감히 어디서 우리와 동등·평등?”이라고 반응할 공산이 아주 크다.
현재 일본이 ‘제2차 경제 강경 조처’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와 정보가 나온다. 나는 일본이 강한 제2차 경제 보복 조처를 취할 확률은 아주 낮다고 본다. 전력 차가 크지 않는 상대가 준비가 돼 있을 때는 공격해도 성공할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는 게 ‘손자병법’의 기본 가르침인데, ‘손자병법’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가 일본이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승산 없는 갈등을 일으키겠는가? 예외 상황은 있을 수 있다. 일본 극우가 일본 정부 정책결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때다. 바깥(한국)을 때리면 안(일본)이 결속된다고 계산할 수 있다.
다시 우리 쪽으로 초점을 돌려, 한일 경제 갈등을 거친 2019년 끝자락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내불남로, 이젠 안녕!”
편집국 부국장 겸 인문연구소장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