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관 앰프에 불빛이 달아오를 때쯤, 턴테이블 위에 LP 한 장 올려놓는다. 시벨리우스(Sibelius)의 교향시(詩) ‘핀란디아’다. 필자가 연초에 가끔 듣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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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올만디 지휘 ‘핀란디아’ 음반 |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를 아우르는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19세기가 끝나는 1899년 11월 한 언론사의 자선기금 마련 행사를 위해 이 곡을 작곡한다.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의 속국으로 언론 통제를 받고 있었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 자유 언론인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모임을 통해 핀란드인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곡들을 작곡하게 되는데 ‘핀란디아’도 그중 한 곡이다.
‘핀란디아’는 작곡 당시 ‘핀란드여 일어나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고 초기 버전에는 합창도 없었다. 지금도 대부분이 관현악으로 연주되는데, 필자는 유진 올만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몰몬 타버나클 합창단이 함께한 LP를 즐겨 듣는다(이 연주를 담은 CD는 아직 구하지 못했다). 유럽 최북단에 있는 핀란드는 서쪽으로 스웨덴, 동쪽으로 러시아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오랜 세월 고난의 길을 걸었다.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핀란디아’는 핀란드의 자연과 조국에 대한 찬가로, 핀란드인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후렴에 붙은 가사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핀란드여 일어나라!
빛과 함께 어둠과 비애는 사라지고
희망과 광명의 아침이 밝았다.
그대들의 억압과 공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
오! 자랑스러운 조국 핀란드여 !
압제자의 지배에서도 무너지지 않았으니
곧 찬란한 아침이 오리라, 나의 조국이여!…
혼성 합창으로 이뤄진 이 송가는 처음 이 곡을 작곡하고 나서 훨씬 뒤인 1941년 핀란드 시인 안테로 코스켄비에미가 가사를 붙이고 ‘시벨리우스’가 합창으로 편곡했는데 이후 핀란드 국가보다 더 유명한 ‘핀란드의 찬가’로 꼽히게 됐다. 오늘날 핀란드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핀란드를 대표한 세계적 기업 노키아가 홍보용으로 이 노래를 자주 썼을 정도다. 유럽 변방이었고 오랜 세월 강대국들의 핍박과 압제에 시달렸던 약소국 핀란드였지만,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의 문화 부국으로 북유럽 선진국이 됐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국가 위상도 높아졌지만, 문화의식과 행복지수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높은 안목을 지닌 민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안목은 문화적 소양을 갖춘 이만이 지닐 수 있는 덕목이다. 2020년 새해엔 온 국민이 대한민국 찬가를 함께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하모니 대표·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