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戰)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만큼 길다. 가장 감동적인 ‘반전의 추억’은 중국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주체는 실천적 반전평화 사상가로 우뚝한 묵자(墨子·기원전 479~381 추정). 그는 노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초나라 왕이 전쟁무기 제조 기술자인 공수반이 만든 구름사다리로 송나라를 침략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즉시 열흘 밤낮으로 말을 달려 초나라에 도착한 묵자는 왕을 만나 “결코 송나라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설득한다. 실제 모의 공방전을 벌인 결과, 묵자는 아홉 차례에 걸친 공수반의 공격을 모두 물리친다. 방어 기술을 익힌 뒤 이미 송나라 수성에 나선 묵자의 제자들 때문에 설령 묵자를 죽인다 해도 공격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초나라 왕과 공수반은 결국 전쟁을 포기했다.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의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한 죽은 한 사람에 대해 죽을죄를 짓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보자면, 열 사람을 죽이면 의롭지 못한 것은 열 배가 되고 또한 죽은 열 사람에 대해 죽을죄를 짓는 것이 된다.” 묵자 사상의 최대 교훈은 ‘전쟁은 불의(不義)’라는 거다. 한국전쟁을 비롯한 동서고금의 모든 전쟁에서 확인된 자명한 진리이지만, 패권 다툼에 가려 끝없이 망각되는 허망한 진리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1969년 10월 15일을 ‘베트남 반전의 날’로 정해 대대적인 반전운동을 벌여나가면서 이 진리에 대한 국민적 각성의 시간을 가진 바 있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국제법 위반이고, 정부가 불법행동을 할 때는 그에 반대하는 게 애국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겪어야 한 인간은/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그 성찰은 밥 딜런의 노래 가사로 남았다.
‘반전의 추억’은 추억일 뿐인가. 그 성찰은 또다시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폭살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으로 자국인이 숨진 것에 대한 정당한 보복임을 강조하지만, 양국 갈등의 근본원인은 오바마 행정부가 했던 ‘이란핵합의’를 2018년 5월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데 있다. “이라크 폭격 중단하라.” “전쟁은 재선전략이 아니다.” 지난 3, 4일 미국 전역 70여 곳에서 반전시위를 벌인 미국인들의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힘이 정의”라는 트럼프의 불의가 2020년 벽두부터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