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가 8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자백했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윤모(53) 씨는 1·2·3심에서 모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윤 씨는 “경찰이 며칠간 잠을 재우지 않았다. 가혹행위를 하며 허위자백을 강요했다”면서 “그때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경찰이 윤 씨에게 자행한 가혹행위가 얼마나 참혹했을지는 상상도 하기 어렵다.
이춘재의 자백이 없었다면 윤 씨는 국가기관으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부당한 재판을 받고, 20년간 옥살이를 하고도 지금도 ‘살인범’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아 버린 국가는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 개인을 대상으로 한 국기기관의 범죄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윤 씨도 당시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22살의 농기구센터 수리공이었다. 국가기관의 범죄행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윤 씨의 경우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권력유지를 위해 국가기관이 무고한 시민을 억울하게 희생시킨 일을 수없이 봐왔다. 박정희 정권 시절 납북 귀환 어부들을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하거나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납북 귀환 어부에 대한 간첩조작사건의 진실을 일부 밝혀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진실 규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전쟁 이후 피랍 어민은 3729명에 달한다. 3272명의 귀환 어부 중 1327명이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반공법 위반 혐의는 어로활동을 하면서 어로저지선 및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어로저지선이 명확하지 않아 이들이 월선했는지 알 수도 없다. 설사 월선했다고 하더라도 고의로 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정권의 지시에 따라 귀환 어부들에게 불법구금·구타·고문을 가해 고의로 북한으로 탈출했다는 자백을 받았다. 법원도 가혹행위에 의한 자백임을 뻔하게 알면서도 이들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귀환 어부 가운데 상당수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취약계층이었다. 국가권력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극히 일부만 진실화해위원회에 사건을 접수해 진실규명을 받고 재심청구를 해서 무죄판결과 국가배상을 받았다. 나머지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존재조차 몰라서 진실규명은 물론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납북 귀환 어부들의 재심사건, 국가배상사건을 진행할 때 피해자들로부터 그들이 수사기관에서 당했던 가혹행위를 직접 듣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법원의 1심 재판을 받을 때까지도 가혹행위자들이 재판정에까지 나와 있어 고문 받은 사실을 얘기하지 못하다가 항소를 하고서야 고문 받은 사실을 얘기하지만, 이후의 재판에서도 누구도 그들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이었던 그들이 국가기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해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그로인해 가정이 붕괴되고, 이후에도 간첩으로 몰려 감시당하고, 숨어살아야 하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수십 년이 지나 국가배상청구를 하면 이미 소멸시효가 지나서 국가배상이 인정되지 않거나, 고문 받고 감옥살이 1년 한 보상이 1억5000만 원에 불과한 것도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국가기관이 개인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국가가 돈으로밖에 배상할 방법이 없다면 그 배상이나마 충분해야하지 않을까.
변호사·법무법인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