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밥을 먹다가 TV를 켰는데, 새로 시작한 예능 토크쇼에서 ‘flex talk’(플렉스 토크)라는 코너가 진행 중이었다. MC는 게스트로 나온 배우 공유에게 몇 가지 질문하면서 조금 뽐내듯 답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원래 하던 행동처럼 자연스럽게, 앉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꼰 채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대답을 마친 후 그는 하면 안 될 일을 한 것처럼 부끄러워했고, 방청객은 그 모습에 환호로 답했다. 방송이 끝난 후 실시간 검색에는 공유와 관련된 글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flex라는 단어가 유독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플렉스(flex)는 1990년대 흑인 래퍼들이 엄청난 부를 일군 뒤 자신의 부가 드러나게끔 뽐내며 자랑하는 문화에서 시작됐다. 여러 뜻이 있지만, 힙합 가사에 자주 등장하면서 ‘뽐내며 자랑하다’는 뜻이 거의 굳어졌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가을, 방송에서 한 힙합 가수가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를 언급했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몇 달 만에 1020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신조어가 됐다. 이토록 빠르게 젊은 세대에 정착할 수 있었던 데 SNS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우리는 SNS가 대중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일부는 SNS가 그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하는데, 1020세대가 특히 그러하다. 그들에게 SNS는 단순히 타인과의 소통 창구 역할로 끝나지만은 않는다. 그들이 그리고 싶은 또 다른 세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을 뽐낼 줄 알며, 그런 행위에 두려움이 크지 않다. 드러내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세대이다. 이를 바라보는 타인은 그들의 선택에 편승하려 한다. 자연스레 유행의 순환고리가 작동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일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는 달리 SNS 자체가 아닌 하나의 플랫폼에 불과했다. 또한, 평범한 사람이 SNS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되는 확률은 낮았고, 된다고 해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유행은 어떤 방식으로든 돌았지만, 속도에서 차이가 컸다.
이러한 변화에는 트렌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의류, 전자제품 시장 등이 먼저 반응했다. 이들은 각종 리포트를 발간해 소비 변화를 파악하여, 변화를 선동하거나 맞춰가며 생존에서 앞서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플렉스와 더불어 비슷한 소재의 기사를 보면 대부분 ‘소비 변화’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관련 기사 대부분은 20대의 과시적 문화를 되돌아볼 필요성이 있음에 주의하며 마무리했다. 그렇다면 플렉스는 단순히 소비 변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일시적인 가치일 뿐일까?
우리는 오래전부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겸손을 최고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현재 1020세대를 포함해 사회가 밀레니얼 세대라 부르는 이들은 이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겸손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뽐냄과 자랑을 죄악시하지 않으며, 드러내야 할 때는 드러내는 게 맞다 생각하고 행동한다. 플렉스는 단지 그 생각을 밖으로 표현한 한 가지 갈래일 뿐이다.
누군가는 플렉스를 단순히 ‘허세’ ‘쓸데없는 짓’으로 표명하며, 시대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수많은 신조어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 1~2년 전에 열풍을 넘어 광풍을 불러일으킨 ‘소확행’ ‘YOLO’조차도 요즘은 잘 듣지 못함을 이유로 덧붙인다. 그들 말대로 플렉스는 소확행과 YOLO의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플렉스의 유무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나’의 위치를 바라봐야 한다.
2020년을 진단하는 다양한 트렌드 관련 저서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점이 있다. 삶의 가치에서 ‘나’를 중시하는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며, 나를 밖으로 드러내는 정도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렉스가 사라지더라도 나를 드러내는 제2, 제3의 플렉스는 계속 나타나지 않을까? 그때도 우리는 제2, 제3의 플렉스를 쓸데없는 행위로 판단하고 말 것인가? 환경은 빠르게 변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모든 답은 각자가 가지고 있다.
작가·‘답은 나였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