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드문 세상이다. 선비의 생명은 지조에 있다. 그러나 지조를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지훈 선생이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고,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고 설파하기까지 했으니 지조 있는 선비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만하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남에겐 봄바람처럼 자상하지만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한 사람도 드물다.
그 반대인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시끄럽지만 공허하고, 남에겐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만 온화한 사람이 넘쳐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움쩍하지 않고 바른말을 하는 기개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칼은 보이지도 않는데 지레 겁을 먹고 시류에 영합하는 사람이 더 많다. 아닌 것은 아니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해야 하는데 그 뻔한 소리를 못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현대사회에서 선비란 누굴까?
모든 직업에 선비는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인식하고, 항상 그 의식 아래 행동하는 사람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손님에게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려 골몰하고 그에 충실하면 선비라 하겠다. 여론이 아무리 아우성쳐도 법관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재판할 때 선비라 할 만하다. 그러나 선비는 참으로 드물다. 본래 선비의 삶이 고단하니 선비가 드문 건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건달은 선비보다 좀 더 많다. 여기서 건달은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키는 그 건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면서 때로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 피우는 사람 정도로 해두자. 이런 의미의 건달에게 악의는 없다. 그냥 특별히 주목할 대상이 아닐 뿐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답답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밉게만 볼 수는 없다. 대충 일하고 대충 살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 식당을 하는 사람에게, 밥이 설익거나 반찬이 덜 싱싱하면 손님을 받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가혹하다. 그래도 식당을 해야 하고 그래도 손님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미안한 마음에 다음에는 좀 더 싱싱한 식재료를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건달적 성품은 그래서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자기 잣대만으로 그들을 매도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 사실 본인이 선비류라고 생각하는 대부분 사람은 실은 건달류에 가까울 수 있고, 많은 경우 악당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몰라 곤경에 처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마지막으로 악당이 있다. 악당으로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하자.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더없이 엄격한 사람은 악당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악당이다. 식당을 하는 사람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음식에 몸에 해로운 물질을 넣으면 악당이 된다. 법관이 의도적으로 증거를 무시하고 증거와 반대의 사실을 인정하여 결론을 내리면 악당이 된다. 언론사 기자가 본인이 속한 회사의 방침과 어긋난다고 하여 사실관계를 왜곡해 보도하면 악당이 된다. 논리를 존재이유로 삼아야 하는 논객이 자기 논리를 부정하는 말을 하면 악당이다. 바야흐로 악당 전성시대인 것 같다. 악당이 너무 많다.
21세기는 정치의 시대이고, 광장의 시대이고, 자기언론의 시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말이 넘쳐난다. 그렇게 말이 무성한 시대가 되었는데 갈수록 공허하게만 들린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분별하기도 어렵다. 그 분별의 어려움을 틈타 거짓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지조를 지키고 삶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선비는 있다. 찾아내기 쉽지 않을 뿐이다. 선비는 존경받아야 한다. 욕심을 내 선비가 되도록 애쓰는 일도 권장돼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하는 이가 많을수록 희망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적어도 선비가 되기 어렵다고 악당이 되면 안 되겠다. 선비 되기가 힘들면 건달 정도로 살자. 건달 정도로 살면서 선비를 존경하고 대우해주면 어떨까? 악당이 되어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보다 낫다. 악당은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악당에게 관심을 주면 안 된다. 악당은 무시하면 없어진다. 국제신문이 악당은 무시하고 선비적 정신을 소개하는 기사를 많이 보도해 주었으면 좋겠다.
변호사·법무법인 청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