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파버카스텔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이상적이라 할만큼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고 극찬했던 그 연필을 제조하는 회사다. 1761년 캐비넷을 만들던 카스파르 파버가 남은 재료로 연필을 만들어 판 게 시초다. 연필심을 경도에 따라 B부터 H까지 18단계로 세분화하고, 원형이던 연필대를 육각형으로 깎아 책상에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오늘날 연필 디자인의 표준을 완성한 것이다. 아이패드가 공책을 대신하는 디지털 시대이지만 세계 최초의 연필회사인 파버카스텔만큼은 9대째 가업을 이으며 올해 창립 259주년을 맞았다.
독일 못지 않게 장수기업이 많은 나라가 일본이다. 오사카의 사찰 개보수 전문회사 곤고구미(金剛組)는 578년 백제 후손이 창업해 2006년 파산할 때까지 무려 1428년이나 생존했다. 587년 창업한 교토의 꽃꽂이 기업 이케노보카도카이(池坊華道會)나 718년 설립된 이시카와현의 온천여관 호시료칸(法師旅館)은 모두 현존하는 1000년 기업들이다. 100년 이상 기업은 3만5000여 곳으로 ‘백년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최소한 일본에서만큼은 신생아 수준이다.
기업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59개 대기업집단의 2010년과 2020년 공정자산(계열사 자산총액) 순위를 비교한 결과,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등 6위까지는 변동이 없었으나 나머지는 등락이 컸다. 10년 전 각각 9위와 10위였던 금호아시아나와 한진은 이번에 58위와 13위로 떨어졌고, STX 하이닉스 현대건설 한진중공업 동양 등 10곳은 아예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카카오(28위) 네이버(42위) 넷마블(45위) 넥슨(48위) 등이 신규 진입해 인터넷 모바일 게임 관련 기업들의 급성장을 대변했다.
올해 창립 134주년인 두산은 국내 최장수 기업이다. 한국에서 100년 이상 지속된 기업은 현재 8곳뿐이다. 부산의 성창기업(1916년)과 마산의 몽고식품(1905년)도 여기 속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수명은 20년 안팎이다. 산업화의 역사가 짧기도 하지만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 가업 상속에 적극적이지 않은 문화 등 여러 요인이 있다. 개인이나 국가처럼 기업도 흥망성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 순위의 진폭이 크고 신생 기업의 진출이 두드러진 것은 산업구조의 변화가 그만큼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기업의 세계야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맞는 곳일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